와인취향
와인은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위스키보다는 낮다고 생각하는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와인병을 유심히 보면 ABV(alcohol by volume) 표시를 볼 수 있는데 알코올의 양, 다시 말해 음료 부피 당 에탄올의 양을 백분율(%)로 보여준다. 와인에 들어 있는 알코올양은 5.5%~20% 이상으로 다양하다. 대략 ABV 12%~15% 와인이 일반적이지만 포트(Port)나 셰리(Sherry)와 같은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은 알코올이 20%를 넘기도 하고 화이트 와인 중 하나인 리슬링(Riesling)은 7~8% 정도로 ABV가 낮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ABV가 12% 이하이면 로우 알코올 와인(low alcohol wine), 즉 알코올 낮은 와인으로 본다.
(오른쪽) 와인에 들어 있는 알코올 양은 5.5%~20% 이상으로 다양하다.
알코올 도수는 포도가 자란 곳의 기후, 생산자의 양조 방식, 포도 품종 등에 영향을 받는다. 서늘한 곳보다 따뜻한 곳에서 자란 포도는 상대적으로 당을 더 많이 갖고 있으며 발효 중 효모는 당을 알코올로 전환하는데 자연스럽게 알코올 도수가 높아진다. 보통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지만 레드 와인도 종류에 따라 다르다. 레드 와인에는 타닌(tannin)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포도 껍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떫은맛을 낸다. 와인 생산자는 떫은맛을 상쇄시킬 수 있도록 보통 당, 산도 그리고 알코올로 균형을 끌어내려 하며 타닌이 꽤 느껴지는 이탈리아 바롤로(Barolo)나 호주 쉬라즈(Shiraz)는 타닌이 적은 편인 프랑스 가메(Gamay)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다. 반면 화이트 와인은 타닌은 없고 산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 산도가 높으면 입안 가득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알코올 도수가 지나치게 높으면 알코올만 느껴져 와인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추운 날엔 주정강화 와인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으로 재빠르게 몸을 데우면 좋겠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엔 녹아웃 상태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ABV가 낮은 와인은 보통 바디가 가볍고 달콤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 알코올 도수 낮은 맛있는 와인, 여기 있습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리슬링, 특히 맛있게 달달한 카비넷(Kabinett)이나 스패트레제(Spätlese)는 알코올 도수가 8~8.5% 정도다. 모스카토(Moscato)로 만드는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은 ABV가 5~5.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름에 빠질 수 없는 싱그러움 끝판왕,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도 9~10%인 경우가 있어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레드 와인은 없을까? 화이트 와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찾기 어렵긴 하지만 가메나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은 비교적 ABV가 낮다. 물론 기후 변화로 인해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는 추세다. 온도가 상승하면 포도가 너무 잘 익어 당 함량이 올라가고 발효 과정 중에 당이 알코올로 변환되니 ABV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포도 수확 시기를 앞당기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포도가 그 풍미를 온전히 지니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당이 축적되는 속도가 더 빠르니…) 흔하지는 않지만, 메를로(Merlot)나 그르나슈(Grenache)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도 11% 정도로 낮은 경우가 있다.
무더운 여름에도 와인 사랑을 멈출 수 없다면 알코올 도수가 조금 낮은 와인을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
*<마시자 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