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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곰 Jan 15. 2020

산책

출산 전 동네산책길

출산휴가에 들어간 지 2주 차...

첫 주에는 평소처럼 일어나 생활했는데 2주 차가 되니 몸이 적응을 했는지 새벽까지 잠이 안 오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난다.

하루 반나절을 앉고 일어서길 반복하고 만삭의 몸을 끌고 출퇴근하는 게 꽤 많은 에너지를 쏟았나 보다.


쉬는 시간이 많아지니 이전의 발 모양이 기억 안 날 만큼 퉁퉁 부어있다.

책도 찾아보고 어느 날 저녁에는 매트에 누워 폼룰러로 붓기에 좋다는 운동도 해본다.

"오빠, 운동하고 나니 다리가 조금 시원해진 것 같아"

이 방법, 저 방법 찾다 이미 출산한 지인 에화를 걸어본다.

 지은아, 바빠?”

“통화할 수 있어, 괜찮아.”

“응, 요새 일은 괜찮고?”

“바쁘긴 한데 그래도 재밌어”

“다행이네, 지은아, 임신하고 막달에 어땠어?"

“임신했을 때 8kg 쪘나. 의사 선생님이 관리를 너무 많이 한다고 했어, 먹고 싶은 거 다 먹지 않고 적당히 먹었으니까!

2,3월 추운 날 패딩 입고 운동장 열 바퀴 돌았잖아"

"안 힘들었어?" 

"괜찮았어,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회복도 빠르고 제왕절개 하고서도 바로 걸어 다녔어.”


주변의 수많은 출산 후기를 들었지만 이런 여자는 없었다. 가장 계획적이고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기 마음처럼 안되는게 임신 기간이고 증상이라 개인차가 있긴하다.

붓기가 심해 활동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매일 불평만 할 수는 없는 일, 지은이의 얘기를 듣고 쉬고 있는 오빠를 재촉해 집 밖으로 나갔다.

평소 우리 남편에게 동네를 걸어 다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자동차가 본인의 갑옷이요, 사무실인 그에게 동네 산책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은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새벽에 기침감기로 잠을 못 자는 나를 위해 다녀오자고 했다.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나가보기로 했다. 낮에는 차가 많이 다니지만 새벽에는 차가 없으니 별도 많이 보이고 공기도 참 좋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단톡주택이 모여있는 쪽에 지인의 집이 있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 인사했던 아주머니 집이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우리 저 쪽으로 가볼까?”

평소 궁금해하던 인테리어 소품 가게도 보인다.

“저기 저 집이네, 마당에 그네가 있는 걸 사진에서 본 적 있어. 2층에는 불이 켜져 있네 , 따님이 피아노도 치고 음악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래선지 아직까지 안 자나보다.”

우리 다음에 놀러 오자. 아가도 같이 오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한참을 걸어 동네 꽃집으로 향했다.

어, 여기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어. 사진 찍어뒀다가 보내드려야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긴해도 마음만은 가벼웠다.

임신하고 9달...

새벽녘, 남편과 함께 걷는 이 길이 오랫동안 생각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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