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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곰 Jan 15. 2020

출산 후 일주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태풍이 온다니 며칠 동안 비워둔 집이 걱정됐다.

안 되겠다, 우리 집에 다녀오자.

조리원 선생님들께는 양해를 구하고 몇 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급하게 나와 정리가 안된 집이라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음식도 버리고 청소도구도 옷가지도 제자리에 갖다 두며 정리했다.

분명, 남편이 집에 다녀갔었는데 모두 제자리라니!!

너무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도 나름 바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부인은 조리원에서 외출이 힘들다며 먹고 싶은 것, 필요한 것 사달라고 심부름시키고 아기 보러 조리 오라고 하지, 일도 해야지.. 많이 바빴을 거다... 그래도 미웠다.

나는 배 아파 아기도 낳고 몇 달간 몸도 망가지며 희생했는데... 목구멍까지 불평의 소리가 나왔지만 참았다.

그때 화장대 위에 둔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하고 들렸던 빈티지 가게에서 사 온 그림이었다.

예쁜 아기와 부부가 마차를 타고 있는 에드가 드가의 그림이었다.

에드가 드가는 여성혐오증이 있어 결혼하지 않은 인상주의 화가였지만 그림으로 표현된 여성들은 비교적 선이 고운 작품이 많았다.  

그림을 구입할 당시만 해도 예쁜 아기가 찾아왔으면 해서 사온 그림이었다.

그렇게 원해서 가진 아기인데...

우리에게 찾아온 아기를 낳고 보니 출산으로 엉망이 된 몸, 출산으로 뱃살과 허리 살은 두배 이상 쪄있었다.

조리원에서 집에 오는 길은 어찌나 상쾌하고 좋던지... 우리 둘이 즐기던 일상을 이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고 속상한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마음이 겹쳐 눈물이 펑펑 흘렀다.

배 아파 아기 낳았는데 살은 안 빠지고 내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아기는 태어나 집에 와야 하는데 집은 너무 지저분하다고... 마음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울면서 했다.

우울증이 찾아올까 무섭고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지 않을 거 같다고...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조리원 선생님께 약속한 대로 다시 들어가야 했으나 너무 피곤한 나머지 푹신한 우리 침대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상쾌한 새벽, 내 침대에서 자고 나니 아프던 것도 나을 것 같았다.

외박한 것이 죄스러워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조리원으로 돌아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 펑펑 울고 났더니 마음이 참 시원해졌다.

내 눈물을 본 남편은 마음이 무거워졌겠지만 어쩔 수 없다. 육아의 부담감, 아빠로서의 책임감 정도는 가져야 하는 거 아닐까.

조리원 동기들과 “어젯밤 잘 잤어요?” 아침 인사로 시작해 아가들이 어떻게 크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간밤에 깊고 깊은 슬픔이 빠져있었지만 이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깊은 슬픔에게 위로가 필요한 것처럼 남편의 마음 담긴 몇 마디 말이 나로 하여금 다시 움직이게 하였다.


혼자 다짐한다.

"아가야, 울고 싶을 때 엄마도 잠깐 울게 그리고 다시 신나게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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