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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곰 Jan 21. 2020

나는 계속 선그라스 부자가 되고싶다

결혼 전, 라섹수술을 했었다.

추석 연휴 즈음 수술을 했기에 며칠은 집에서 쉴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컴퓨터도 봐야 하고 바깥 활동도 해야 했기에 보호안경이 필요했다.

지금 남편이 된 구 남자 친구에게 보호안경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선물로 안경을 두 개나 가져온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우리 아버님은 렌즈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다.

그 후로도 무슨 날이 되거나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면 선글라스를 만들어 우리 부부에게 선물해주셨다.

난 너무 많은 선글라스에 하나 두 개는 지인에게 주기도 하고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곤 했는데 아버님께서 기침이 길어지시던 어느 날 폐암 3기 선고를 받으셨다.

처음에는 일상생활을 하시며 회사도 나가시고 어느 때처럼 밝게 지내셨다.

심지어 얼굴빛이 좋아져 역시 담배를 끊어 그런 것 같다고 우리 부부는 이야기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시니 힘들어하시는 날이 많아지고 식사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졌다.

잠을 못 주시고 입이 써서 음식이 입에 맞질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님께서 선물로 주신 선글라스를 자리 차지한다고 정리하려고 했던 내가 조금은 창피해지고 부끄러워졌다.

아버님이 계속 아프시며 사업 정리를 하시는데 내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아기를 키우며 직장에 나가지 않는 동안은 남편을 보조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리를 지키며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부모님께 힘이 되어드리자”라고 말한 게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암은 걸렸지만 하루아침에 가는 게 아니니 너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아버님을 뵐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허허허, 웃으며 우리에게 용돈 주시던 아버님, 식사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방귀를 뀌시던 모습도...

친정엄마에게 듣기로는 교직생활을 하시던 할머니는 생전 아픈 적이 없던 건강체질이셨다고 들었다.

큰 질병은 아니었지만 교직생활로 빨리 돌아가기 위해 했던 수술이 잘못되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때가 내가 태어난 지 5개월 즈음이라고 들었다.

할머니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할머니와의 정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나이기에 우리 아가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었다.

이제는 아기가 태어나 방긋방긋 웃고 곧 걸어 다니며 안기기도 할 텐데 아버님께서 먹는 약들로 인해 마음 놓고 예뻐하실 수 없고 힘들어 보이셔서 너무 속상하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본다.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찾아 주문하고 드셔서 힘이 될만한 식품과 음식도 검색한다.

좋은 공기를 위해 커다란 공기청정기를 거실 한가운데 선물해드리기도 한다.

읽어보실 좋은 책을 챙겨드리고 힘이 되는 한마디를 건넨다.

또, 가끔은 아기와 함께 아버님 댁을 찾아 아기의 재롱을 보여드리기도 한다.

못다 한 내 마음을 이 곳에 전해 본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저희 곁에 오래오래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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