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려 들지 말고 무시하라고?!
“도대체 요즘 세상은 왜 이런지… 아들이 셋이나 있어도 누구 하나 즈이 집에 하룻밤 주무시고 가라는 자식이 없다. 다들 마누라한테 쥐어사느라 추석날도 처갓집 가기 바쁘고.” 고정 레퍼토리 시작이다. “내가 밥 해먹이고 대학 보내고 장가 보내고 다 했는데, 부모 공은 모르고 지 마누라 지 자식만 중하고…” 못 들은 척, 안 들은 척.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집안꼴을 생각하면 나보다 니 아버지가 일찍 간 게 낫잖아. 내가 가정을 지켜서 지들이 이 정도라도 사는 거지.” 얕은 접시 같은 참을성이 결국 바닥나고 만다.
“엄마, 고만하지. 부모가 되어서 자식한테 당연한 거 해준 거잖아. 우리 형제들 만한 애들도 없어.며느리도 다 착하고, 손주들도 잘 크고. 누구 하나 엄마 속 썩이는 사람이 없잖아. 근데 자식한테 뭘 그렇게 바라는 거야?”
“자식은 부모한테 받는 게 당연하고, 부모는 바라면 안 되는 거야? 예전에는 안 그랬다. 부모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시어머니 무서워 뒷걸음질로 나가고 그랬어.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명절이나 날 좋은 연휴에 집에 계시면 자식 타박이 유난해지곤 하니까.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틈나면 방문 닫고 제 방에 들어가는 무뚝뚝한 딸내미랑 집에 있는 대신 아들이 모시고 나들이도 가고 맛난 밥도 사드리길 바라시겠지. 하지만, 다들 집에서 편히 쉬면서 엄마를 모른 척 하는 게 아니라고.
골치 아픈 회사일로 연휴에도 사무실에 나가고, 명절에도 가게를 닫을 수 없고, 차 타는 걸 싫어하는 엄마를 모시고 지방인 제 집에 왔다갔다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 사실, 지 새끼 챙기면서 연휴에 집에서 좀 쉬기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지적과 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와의 외출은 에너지가 장난 아니게 필요한 일이다.
“엄마는 자식들이 고마운 적 없어?” 가끔 듣다가 지쳐 우문을 던지기도 한다. “부모자식간에 말을 해야 아니? 당연한 걸 뭘 말을 해?” 짜증 지수 상승. “당연하지! 표현을 해야 알지. 말 안 하면 어떻게 알아? 그리고, 그럼 왜 맨날 맘에 안 들고 서운한 건 이야기하는 거야? 그것도 하지 말지.” “사람이 원래 좋은 건 당연하게 느끼고 나쁜 게 눈에 들어오는 법이야. 넌 안 그래?” 음, 내가 왜 뜨끔하지?? 아닌 척, 무시무시!! “난 안 그래. 난 자식도 고맙고 동생들도 올케도 다 고맙게 느껴.” “그래그래. 넌 많이 배워서 그런다. 난 못 배우고 무식해서 그러는 거야. 그냥 내 말 무시하면 되잖아.” 스톱스톱!! 입 꾹 다물고 속으로 부글부글. 이럴 땐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한다. “나 공원 한 바퀴 돌고 올게.” 등 뒤에 뭐라뭐라 하는 엄마 말에 대꾸 안 하고 이어폰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엄마의 꿋꿋한 주관과 기억력 저하에 힘 입은 ‘내 맘대로 논리’ 퍼레이드는, 그것만 모아도 책 한 권 분량이다.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장면 1 며느리들이 친정 가는 걸 못마땅해 하시는 중
“새댁도 아니고 다들 왜 그렇게 친정을 가고 싶어하는 거야? 출가외인이 되었으면 시집 귀신이 되어야지.”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엄마는 왜 출가외인인 딸이랑 사는 거야?” “그건 형편이 다르지. 니가 필요해서 같이 살자고 들어왔지, 내가 부른 거 아니잖아. 그럼 이제 나 필요 없으니까 따로 살아야 하는 거야?” “아니, 같이 살면서 내가 생활비 내고……”관두자. 찌질의 끝을 볼 필요는 없잖아.
#장면 2 고3 손녀가 추석 차례에 빠진 상황
“이런 날 머리도 식힐 겸 하루 공부 빠지고 같이 데리고 오지.” “아휴, 수능이 코 앞인데 어떻게 와. 와도 편히 쉬지도 못해.” “그렇게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하니, 그럼 서울대 가겠네.” “요즘 서울에 있는 대학 가기도 얼마나 어려운데… 서울대는 하늘의 별 따기야.” “서울대가 신입생을 조금 뽑는 거야? 그럼 서울대는 누가 가는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갈 사람은 다 가겠지.” “아니, 그게, 죄 강남애들이….”하긴 나도 잘 모르겠더라. 지인 중엔 서울대 졸업생이 꽤 많은데, 자식들이 서울대 들어가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잖아.
#장면 3 불광사 일요 법회 가기 위해 외출 준비하는 중
“엄마, 늦겠어. 그냥 저 밤색 바지 입으면 안 돼?” “허리 고무줄이 잘 안 늘어나. 화장실 갈 때 불편해.” “저 회색 바지는?” “절도 하고 그러는데 저런 일자바지는 안 돼.” 이거 저거 입어보다가 결국 맨날 입어서 엉덩이가 빤질한 검정 법복바지 선택. 다른 바지 입게 하려고 했지만 실패다. “여기 핸드폰. 얼른 가방에 넣으세요.” “자꾸 재촉하지마. 노인은 채촉하면 안 돼. 늦으면 늦은대로 가야지 어떻게 시간을 맞춰.” 그래. 맞는 말이야... 늦은 김에 나도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출발했는데 길이 제법 밀린다. “지금 몇 시야. 법회 중간에 들어가겠다. 괜히 니가 태워준다고 해서 더 늦겠다. 나 혼자 전철 타고 갈 걸.” “니가 커피 타는 바람에 늦은 거야.” 와! 스팀 푹푹. 혼자서 잠실을 어떻게 가신다고 큰 소리야. 늦어도 된다고 여유 부린 건 누군데!! 할말하않.
우리 엄마가 원래 저랬나? 주말도 없이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하고 집에 와서 잠만 자는 하숙생으로 30여 년을 살았다. 그때는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고, 딱히 관심도 없었다. 퇴직 후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뒤늦게 발견한 엄마는 개성 강하고 성취욕 높고 자존심 센 분이다. 여기에 기억력 장애가 더해지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자기 주장이 더 강해지고, 한번 잘못 입력된 정보는 수정이 안 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만 것이다.
엄마라고 무조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성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때로는 자식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필요하다고, 그런 게 좋은 거라는 게 평소 내 지론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우리 엄마가 되고 나니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다. 아이구 내 새끼 등 두드려주고 쌈짓돈 모아서 손주들 용돈 주는, 늙으면 자식말 들어야지 하는, 그런 엄마가 좋아보이는 거다.
이 모순을 어찌 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