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심리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 대해 좋았던 인상들을 나열할 때면 내 말의 마지막은 아무튼 매번 "그래서 좋고 착한 사람 같아!"으로 끝났다. 살면서 사람을 좋아하고 칭찬하는 데에 그렇게 큰 이유가 필요하냐마는 나는 친한 사람은 물론 처음 만나고 온 사람들을 두고 쓸데없이 긍정적인 수식어만 남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끔 술자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직까지도 "그럼에도 인간은 착하게 태어난 건 맞아."라고 할 때가 많으니까.
그러면 그만큼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밖에 없냐고 할 때, 그건 또 아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도믿걸 혹은 보이들에게(일명 도를 믿습니까?를 묻고 다니는 유) 대학교 안에서, 버스 정류장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지하철 안에서 등등 별의별 소개를 들어가며 사기를 당할 뻔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 외에도 아무 생각 없이 믿기만 했다가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적도 많았으니까.
A는 그런 나를 너무도 잘 알았다. 매번 내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좋은 말을 할 때면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의 ~한 특징들이 어째서 좋고 착한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가는 건데?"라고 했다. 착하고 좋은 건 더 겪어 봐야 아는 거라고 함부로 사람 그렇게 좋게 보지 말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 쉽게 되는 거 아니라면서, 내가 어딘가 하나에 매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걸 항상 우려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A가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왜인지 좋았다. 줄곧 내가 하는 말마다 태클을 걸 때가 더 많았던 사람이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누구보다 나를 생각해 준다는 걸 내가 잘 알았으니까.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작은 것 하나도 쉽게 털지 못하고 속앓이 하는 나를 A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면서도 인간의 마냥 좋은 면만 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솔직해야 할 때에는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말해주는 충고라서 쉽지는 않지만 A가 하는 말이면 생각도 않고 넙죽 받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치 어떤 음식이라도 엄마가 해 주면 당연히 믿고 먹기만 하면 되는 게 일이었던 것처럼 사람 쉽게 믿지 말라는 A 말은 내게 당연히 믿고 들었던 그의 많은 말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조언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번번이 실패했다. 노력은 했지만 어쩌면 결과는 예정되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사람 쉽게 믿지 말라는 사람을 또 누구보다 그렇게 믿었으니까. 다만 요즘 들어 처음 생각하게 된 게 있다면-물론 그 사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왈가왈부하지는 않았으나-어쩌면 그럴 때마다 내가 본인도 너무 많이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편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