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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놈 떡 하나 주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이옥섭 감독이 말하는 "미울 땐 그냥 사랑해 버리자"는 태도

며칠 전 어떤 사람이 너무 미우면 그를 아예 사랑해 버린다는 이옥섭 감독의 인터뷰를 봤다. 와 이건 뭐지, 마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와 같은 맥락인가 싶어 뒤에 나올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들어 보니 그녀가 외국을 여행하던 당시 버스 안에서 한 여성이 패디큐어를 칠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공장소인 버스 안에서, 비매너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을 그 누가 기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옥섭 감독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옥섭 감독은 이내 다른 각도로 그 여자가 보였다고 한다. 그녀가 만약 자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라고 가정한다면, 즉 그 상황이 영화 속 한 장면이라 한다면 그저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에는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인간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답 첫 번째는 상실감, 두 번째가 미움이다(각각의 비중은 순서에 따른다). 지금 쓰고 있는 게 미움에 관한 이야기이니 첫 번째 답은 일단 뒤로하고 미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미움은 일종의 딜레마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쓴다는 건 그 사람이 내게 유의미한 존재라는 말인데 여기서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99개의 좋은 점이 있어도 1개의 나쁜 점이 존재하는 순간 전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1개의 나쁜 점에 꽂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만사를 제쳐 두고 유일한 나쁜 점 하나를 제거하는 데 사활을 건다. 미워하는 마음 역시 이와 동일하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이러니하게도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이런 점이 별로고, 저런 점이 싫고, 나와 어떻게 맞지 않는지 등 부정적인 감정을 끌고 오는 것도 나, 그 감정을 더하는 것도 내가 되어 결과적으로는 내가 나를 파괴하는 메커니즘이 된다.


그러니까 미운 사람을 사랑해 버리는 건 결국 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된다. 미워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를 제거하기 위해 드는 온갖 수단과 에너지를, 이제는 그를 사랑하는데 써버림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사랑으로 충만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노력해 볼 만한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번도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는 옛 말을 이해한 적도,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었는데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요즘이다.



네가 만든 쓰레기 풀장에서 자맥질을 하며
난 너를 사랑하려고 했지
너를 미워하면 스물네 시간 강렬하게
너만 생각하게 될까봐,
 차라리 물안경을 쓰고 너를 사랑하려고 했다
이게 뭐라고
박상수 『오늘 같이 있어 』, 초합리주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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