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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논하려거든『물랑 루즈』부터 봐야 한다

조건도, 현실도, 장애물도 뛰어 넘은 사랑이라는 게 여기 있었다.



뮤지컬 장르의 영화는 그동안 내게 약간은 생소한 것이었다. 나의 관심이 부족했던 탓일 수도 있고 뮤지컬을 보며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따라서 영화를 보게 될 기회가 있을 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싫다, 흥미 없다 이런 개념은 아니었다. 그래서 소위 레전드 영화로 유명한, 나만 빼고 다 아는 듯한 "물랑 루즈" 또한 친구의 권유로 겨우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물랑 루즈의 빛나는 다이아몬드, '새틴'
물랑 루즈의 공연을 이끌어가는 사람들

영화 ‘물랑 루즈’는 파리의 몽마르트르에 위치한 지상 최대의 화려한 세계, 오늘날의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핫한 공연장을 배경으로 하며 공연장의 명칭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곳은 당시 돈을 지급하고 공연장에 온 관객들(대다수가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 남성 저명인사들)을 위해 자극적인 의상을 입고 퍼포먼스 하는 여성들의 직업 공간이다.


소위 ‘창부’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이 여성들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리고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몸값이 높아지며 그러므로 최대한 관객들의 눈에 특히 잘난 남성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 엄청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은 이 세계에서 그녀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여성`으로서 삶 그 자체를 대변하고 있으며 오늘날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 상품화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셈이다.



주인공 '크리스찬' 역(이완 맥그리거)와 '새틴'역(니콜 키드먼)

이들 가운데에서도 `빛나는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끼를 겸비한 여자 주인공 새틴(니콜 키드먼)이 있다. 니콜 키드먼 특유의 눈부신 피부와 너무 잘 어울리는 빨간 립 그리고 매혹적인 눈 색깔까지 모두 새틴을 묘사하기 위해서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했을 만큼 영화 속 새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최고의 인기와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중요하다.


누구보다 자신을 상품화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탓에, 새틴은 진정한 사랑은커녕 자신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남성들 그 누구에게도`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을 느낄 수도 그리고 줄 수도 없었다. 마치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차원으로. 말이다. 그렇게 평생 가벼운 사랑만을 할 것 같았던 새틴의 인생은 사랑에 대한 시와 글을 쓰기 위한 목표만으로 프랑스 몽마르트르로 건너온 영국의 청년, 크리스찬(이완 맥그리거)을 만나고 나서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사랑에 빠진 새틴과 크리스찬

크리스찬은 사랑에 대한 작품을 쓰기 위해 최고의 공연장으로 건너왔지만, 일생 진정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그러던 와중에 동료들을 따라간 물랑 루즈에서 새틴의 공연을 보고야 말았고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버린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그녀를  남자들이라면 모두가 그래 왔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그런데 크리스찬은 지금까지 새틴을 거쳐 갔던 보통의 남성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새틴을 원했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돈도 없고, 높은 신분도 없었지만 아름다운 글을 쓰고 아름다운 말들을   있었던 진실한 사랑에 대한 신념 하나만은 누구보다 뚜렷했다. 그는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고 영화 내내 이야기한다. 새틴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항상 일관된 진심을 표했던 크리스찬은 결국 새틴도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보통의 극적인 로맨스 영화에서도 그러하듯이 이 영화에서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각종 장애물과 한계는 너무나도 컸다. 사실상 ‘창부’라는 타이틀과 현실에서 벗어나기 힘든 새틴과 이와는 반대되는 속성의 지고지순한 사랑, 순수함을 지향해 온 크리스찬, 둘 사이의 만남 그 자체가 처음부터 너무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주변 요소들까지 배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결말이 보여 주 듯 말이다.



비극이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새틴과 크리스찬의 무대

최고의 부와 아름다움을 누리며 이것이 자신의 삶에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새틴이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함께 하고자 했던 진정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비극적이게도 그녀는 스스로도 몰랐던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더 비극적인 것은 끝까지 불안정해 보이기만 했던 크리스찬과의 관계 속 모든 장애물을 넘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크리스찬의 품에 안겨서 숨을 멈춰 갔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장면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단 한 번도 당당하게 사랑할 수 없었던 그들의 사랑을 비로소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무대를 끝으로 동시에 무대 뒤에서 헤어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헤어지는 장면에서 끝내 죽어가는 새틴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크리스찬은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거의 오열에 가까운)을 멈출 여력도 없이 뚝. 뚝. 뚝 흘렸다.



어느새 나 또한 크리스찬만큼이나 오열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전까지 아무리 애틋한 장면이 나와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감당이 안 될 만큼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어떤 소리를 낼 수도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 목이 막혀버려서 그나마 남은 나의 감각기관 중 가슴의 먹먹함을 풀어낼 수 있는 곳이 눈뿐이었기 때문에 있는 힘껏 울었다.


그동안 나는 나름 슬픈 사랑 영화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 울기도 많이 울어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물랑 루즈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봤던 그 어느 사랑 영화의 슬픈 장면보다 먹먹하고 절절하며 비극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봐도 그렇게 슬퍼하고 울 수 있는 자신이 없을 만큼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비극적이었다. 이때의 감정을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형용사 또한 없을 만큼 말이다.


이것은 아마 크리스찬이 곧 이완 맥그리거였고, 이완 맥그리거가 크리스찬이었기 때문에 전달 가능했던 감정이었던 것 같다. 새틴과의 사랑에서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크리스찬 특유의 눈빛은 그 어떤 배우가 와도 묘사해낼 수 없었을 만큼 절절했다. 이것은 정말 그 순간의 현실적인 슬픔과 상실을 느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눈빛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진심을 다해 요동쳤던 것 같다.


또한, 이 영화를 보며 크게 느꼈던 것이 있다. 사람들이 보고 겪을 수 있는 것들 가운데에서 느낄 수 있는 극도의 무력감과 괴로움은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하는 것, 더 나아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인지할 때 오는 것이라는 점이다. 한 사람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그가 바탕을 두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학부 교수님의 목소리가 불현듯 스쳐 가며 말이다. 그 이후의 삶 또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 힘든 것이기에, 삶이 때로는 언제, 어디서, 누군가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너무나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영화의 특색 상 여성의 상품화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그리고 극대화되어 있는 부분들은 어떤 면에 있어서 보기 힘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성 상품화의 중심에 놓여 있는 여성의 상황과 조건들이 타인과의 관계 진정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들이 그러하다. 오늘날 상황에 적용을 해볼 때도 마냥 긍정적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을 해볼 수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 개인적으로 느낀 불편함을 넘어 이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실현을 오롯이 가능하게 한다. ‘물랑 루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행위에 있어서 개인은 얼마만큼의 진실함으로 일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서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증명하고 실현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용기와 희생정신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면서 말이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남아있던 여운이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또 찾아왔다.


한동안은 당시에 마주했던 크리스찬만의 상실의 눈빛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다.

남은 후유증이 걱정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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