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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해지는 법을 잘 안다는 것

김신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읽었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이상하다. 어제 주어졌고, 오늘 주어지고 있고, 내일이 되면 또 주어질 게  시간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루 온종일 열심히 일하면 돌아오는 건 저녁,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와 가족과의 약속을 미루기 일쑤이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늘 나중을 찾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는 '나중에' 말고 '지금'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저자의 애정 어린 바람이 담겨 있다. 나아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실행으로 옮기고 매일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실천들이 일상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내게 이 책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의 연장선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별것 아닐 수 있는 일상을 성실히 들여다보면서 매일의 소중함을 발견하고자 한 저자의 태도가 여전했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 책에는 그녀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들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들과 저자의 관계성을 면밀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이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해 가는 저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번거롭고 힘든 일 열 개를 하더라도 내게 좋은 일 하나를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해내고 마는 사람.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들, 만나는 사람들 하나 허투루 보내지 않고 이내 내 일상으로 가져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러한 기억을 벗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이로써 자신의삶을 긍정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 김신지 작가의 이야기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에 담겨 있다.

시간과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그 둘의 총량을 아는 사람 이하도 이상도 아닌 것이다. 시간과 행복이 소중하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후회 없이, 나답게 살아야 할지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방법이 아닐지라도 전보다 열린 마음으로, 나다운 루틴으로 최선의 하루를 살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현실적으로 유용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은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엄마 인숙 씨에게 일기를 써보라며 권유했고 언젠가 본가에 갔을 때 소박하면서도 인숙 씨의 모든 일상이 담긴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장에는 그날의 날씨, 농작물의 상태, 마음 상태 등에 관한 매일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매 장마다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역시 인숙 씨답게 쓰인 이야기들이었다. 이 장면이 퍽 기억에 남는다. 요즘에야 일기니, 기록이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트렌드가 된 행위가 되었으면서도 나와 내 동년배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표현의 수단을, 친구도 아닌 엄마에게 권유한 저자의 마음이 내가 뭐라고 괜히 기특하면서도 뭉클했고 한편으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이제 곧 60을 기다리는 엄마. 우리 세대 어머니의 존재들이 그렇듯, 엄마 또한 숱하게 다이나믹한 삶을 지나왔는데, 어쩌면 '우리'의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하나 글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 갑자기 아득하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내 일기는 기가 막히게 열심히, 잘 써왔으면서 엄마한텐 왜 한 번도 일기라는 것을 써보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도 일기를 한번 써 보면 어때? 내가 노트 하나 사다 줄 테니까 써봐."


무슨 일기냐 하면서도 엄마는 "네가 써보라니까 한번 써보기는 할게."라는 의외의 긍정적인 대답을 해줬다. 그날 이후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 일기는 잘 쓰고 있어?"라고 매일같이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줬으면 그만이지, 알아서 쓸 거를 왜 자꾸 물어보냐고 하지만 내가 일기를 사준 그날 바로 시작해서 나름대로 잘 쓰고 있는 듯해 보인다. 어느 날은 자다 눈을 뜬 아빠가 침대 한편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있는 엄마가 무슨 생각에 잠겨 있다길래 놀랐다며 말하니, 엄마는 내가 쓰라고 하는 일기를 썼을 뿐이라고 답했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의 기록이 쌓여 가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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