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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19세기 낭만주의를 말하는 일

흐름출판, 영문학자 김성중,『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리뷰


자칭 낭만주의자를 지향하는 내 눈을 사로잡은 책,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였다. 클래식한 느낌의 고전 명화에 비비드한 핫핑크 색과 형광 연두색으로 포인트를 준 표지를 보고선 설렘과 호기심이 마구 생겨났다. 이 책은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이 시대적 트렌드가 되어버린 오늘날 사라져버린 감수성을 다룬다. 처음에 '낭만'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풀어나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도, 카피에도, 심지어 목차에도 낭만이 어떤 방식으로 서술될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영문학자인 만큼 이 책은 영문학 그것도 낭만주의가 꽃 피었던 19세기 영국의 영시들을 중심으로 낭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한때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또 시를 좋아하기도 하는 나는 퍽 인상 깊게 읽었다.


어쩌다 보니 심플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을 트렌드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오늘날, 이 책은 구구절절할지언정 감정에 진심이었던 문학가들의 작품을 통해 솔직함의 가치를 드러낸다. 나아가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마음을 은유와 비유 등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가 있다. 살다 보면 오랜 관성이 되어 하던 말만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말이 몇 없어서 어딘가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이다.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는 이러한 우리 삶의 방식을 경계하게끔 한다. 대표적으로 찰스 디킨슨,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에즈워스, 조지 고든 바이런 그리고 베토벤의 작품 등을 살펴보면서 낭만주의가 오늘날 우리 삶에 가져다줄 수 있는 풍요와 다채로움을 이야기한다.

평소에 19세기 영국의 문화적 배경이나, 영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분명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며칠 미세먼지로 뿌예진 창가를, 내리는 비가 촉촉하게 다 적셔 버리는 느낌이다.


다만 이 책의 아쉬웠던 점은 위에서 말했지만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을 중심으로 한 낭만에 관한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히 책의 디자인이나 목차에 호기심을 갖고 구매한 이들이 영문학에 관심이 없다면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본문에 영시와 그 번역이 함께하는데, 분량적으로 약 두 페이지 이상에 영시가 적혀 있는 부분이 많아 레이아웃과 페이지 활용이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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