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부재에 동반되는 것들
몇 달 전에 한 다리 건너서 알고 있는 지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동안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들어본 적 없던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도 내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고 또 먹먹하게 만들었던 소식이다. 아마도 26살, 내 나이 언저리에 있는 비슷한 또래의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리면 어리고 많으면 많다고 할 수 있는 나이. 그러나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일지라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어리지 않다는 이유로 담담해질 수 있는 충분한 나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부모님 두 분은 아버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할아버지 되시는 분을 일찍이 여의셨다. 아버지는 내가 8살이 되던 해에 나에게 할머니 되셨던 어머니와의 이별까지 겪어내셔야 했다. 당시 아빠의 나이는 고작 30살 초반이었다. 머지않아 내가 맞닦드리게 될 나이. 여전히 멀게 느껴지나 결코 먼 나이만은 아닌 그럼에도 여전히 어린 30살 즈음에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그 당시 아빠의 모습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8살이 되던 해 초겨울까지 함께 사셨던 할머니는 어느 순간 찾아온 당뇨로 남은 일생을 매우 힘들어하셨다.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온전히 우리 가족의 몫이었으며 특히 고모와 아버지의 무너짐이었다. 누구보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지만 지켜보는 것만이 최선일 수 있는 순간은 감히 예측하건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괴로움 중에서도 괴로운 순간일 것이다.
그렇게 꽤나 오랫동안 투병을 하셨던 할머니는, 완연했던 겨울이 막 가려고 하던 2월 중순에 돌아가셨다. 2월 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폭설이 내렸던 겨울이었다. 마치 떠나가기 싫어하던 겨울이 마지막 어리광을 부리 듯 말이다.
아빠는 생각보다도 많이, 오래 힘들어하셨다. 단지 회상하는 입장에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아빠의 당시 심정은 어떤 절망적인 형용사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우리 가족은 다른 동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이사는 언 1년간 방황을 했던 아빠의 할머니와의 이별에 대한 마지막 절차이자 예의였다.
죽음은 그러한 것 같다. 불과 어제까지 혹은 오늘 한 순간까지 일상을 공유했던 이의 영원한 부재를 통해 그와의 추억을 영원한 어제의 일로 만들어버린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우습게도 말이다. 죽음을 통한 부재는 영원히 추상적일 부재이다. 더 이상 나의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알지만 존재하지 않음에 대해 구체화하지 않는 이상 진정한 부재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때때로 부재가 잔인한 이유이기도 하다.
부재의 동사형인 '부재함' 이 구체화되어야만 부재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몇 번이고 구체화된 부재를 경험해야 비로소 죽음과 죽음에 의한 부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사실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다. 생애가 끝나기 전까지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