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눈물의 관계성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웃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행복이라는 것은 웃음보다는 울음과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너무 행복할 때 눈물이 난다. 이를테면 거실 한 켠의 커다란 액자 속 가족의 웃는 사진들을 볼 때, 강아지의 어릴 적 독사진을 볼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술과 함께 하루의 막을 내리고 있을 때, 우여곡절이 많았던 두 사람이 결국엔 해피엔딩을 맞이한 영화를 볼 때, 배탈이 났을 때마다 배를 문질러주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
피부 표면을 타고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라 왜 수도꼭지를 힘줘서 한 번에 돌렸을 때 쏟아지는 물처럼 그냥 '왈칵' 쏟아져 흐른다. 마치 퍼내도 퍼낼 것이 가득한 깊은 우물이 마음 안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다정이 나를/김경미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 나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행복할 때면 눈물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누가 다정하면 마냥 행복해야 하는데 나를 죽일 것만 같다니 역설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와 닿았다.
나에게 행복함의 순간이란 시인이 다정함으로부터 느끼는 두려움과 통한다. 행복하다는 것은 현재 나를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정서적인 것이든 나를 온전히 충만할 수 있게 하는 '무언가'.
그러나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갈 세상 외에 영원한 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영원성의 부재를 자각하고야 말기에 나는 행복할 때마다 슬플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인생은 언제까지나 역설로 둘러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