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따뜻한 겨울

어쩌면 가장 따뜻한 계절, 겨울에 관하여

왜, 간혹가다 그냥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지만 말하는 방식과 제스처, 분위기 모든 것이 조화롭게 맞아떨어지는 탓에 보면 볼수록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사람. 만약 겨울이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극단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라 하면 가을이다. 그러나 설레게 되는 계절을 말하자면 겨울일 것이다. '좋아한다'라는 마음과 '설렌다'라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가?


겨울은 어딘가 나를 설레게 한다.


나는 향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향수 뿌렸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정도의 향기를 좋아한다. 은은하게 퍼지다 금세 없어지는 그런 향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어 잔잔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 향을 좋아한다. 그러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향의 계열은 머스크, 우디, 시더우드 등과 같이 다크하고 묵직한 느낌의 것들이다. 계절로 따지다면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향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 취향이 확고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특정 향기들을 계속 맡다 보니 내가 그 향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렇게 맡다 보니 더 좋아지는 경우였다.


문제의 향수, '롤리타렘피카'

향수로 말하자면 '롤리타 렘피카'라는 향수를 정말 좋아한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 향수는 머스크 베이스를 지니지만, 살 냄새로 유명한 또 다른 머스크 향수인 '더바디샵'의 제품과는 또 다르다. 뭐랄까 어딘가 모르게 더 강력하면서도 복잡한 머스크 향이다. 달콤한 듯하면서도 씁쓸한 이것의 향기는 자꾸만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고 이내 나를 매료시켰다. 향의 무게만큼이나 겨울에 이 향수를 뿌리면 낙원이 그런 낙원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그러하다.


마치 달고 짠맛의 조화 혹은 음양의 조화와 같이 한없이 서늘한 겨울의 날씨에 뼛속까지 따뜻함과 포근함을 전해주는 그런 조화스러운 향기라고나 할까. 이것은 때때로 가늘게 늘어진 겨울바람을 타고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지곤 했다. 보통은 겨울에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로. 그럴 때마다 그들은 늘 '포근하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상 포근하다와는 거리가 먼 추운 날씨에 포근함과 따뜻함을 안겨다 주는 향수. 의도치 않게 훅 들어와서는 나의 정서적 안정성을 회복시켜주는 그 태도가 무척이나 바람직하다. 이제 나는 롤리타 렘피카 없는 겨울은 떠올리지 못할 만큼 이 둘에 조합에 맹목적인 설렘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겨울의 솔직함이 좋다. 무거운 향수의 진가를 여과 없이 드러내 주는 솔직함. 체취라고는 땀 냄새뿐인 여름과는 달리 겨울은 다양한 농도와 다양한 질감과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진 체취들로 가득하다. 가끔씩 내가 뿌리는 향수만큼이나 묵직한 향기가 누군가와의 코트 너머 거리로 전해질 때면 그 순간의 찌릿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황홀하다.



또, 나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협회 회원 중 한 명일 정도로 차가운 것을 좋아한다. 열이 많아서인지, 화가 많아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따뜻한 것이 잘 받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따라서 날씨가 더울 때는 물론이거니와 선선할 때도 추울 때도 줄곧 차가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오늘은 따뜻한 커피를 한번 마셔볼까?'라는 생각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시원해서 잘 먹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것은 '도저히 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내가 겨울에는 자진해서 그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생각을 하곤 한다.


문제의 따뜻한 캬라멜마끼야또

그중에서도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따뜻한 캬라멜마끼야또'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것마저도 차갑게 마셨을 나인데 유독 겨울만 되면 달고 따뜻한 것에 이끌린다. 아주 본능적으로 말이다. 유난히 매서운 바람에 더 이상 남아 날 볼이 없는 어느 추운 날, 히터의 열기로 가득한 카페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따뜻한 캬라멜마끼야또를 한잔 주문한다.


주문이 접수된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설레기 시작한다. 우선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만 온전하게 따뜻할 수 있는 커피잔의 온기를 떠올린다. 다음으로 예쁜 라떼 아트가 그려진 우유 거품 위에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점 하나를 보며 이것의 당도는 밖에서 내가 당하고 온 차가움의 수모를 모두 잊을 만큼 충분할까?라는 기대를 할 무렵 주문한 메뉴가 나온다. 이미 알고는 있지만 오늘은 또 새로울 것 같은 맛. 그렇게 따뜻한 캬라멜마끼야또 한 입을 마시면 혈관 구석구석이 달달함과 따뜻함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 느낌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그냥 좋다. 너무너무 좋은 거다. 이것은 마치 추위를 견디기 위해 고갈된 에너지원을 공급받아야만 했던 몸의 가장 필사적인 리액션일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따뜻한 캬라멜마끼야또를 겨울만 되면 찾고는 한다.


지금 막 생각한건데, 그래서 겨울은 가장 추운 계절인 동시에 가장 따듯한 계절인 것 같다. 아니면 그토록 춥기에 더 쉽게 따뜻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 한번의 계절을 더 지나야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 설레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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