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것보다 더 많은 빈도로 '어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는 부모님과 함께 나이 먹어가는 자식의 입장으로서 사는 것에 대해 아주 작게나마 입 뻥긋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닐까라는 느낌에서다. (오만일 수도 있다. 느낌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니까)
어른 1)다 자란 사람 2)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정확히 어떤 것일까? 스무 살을 갓 넘겨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을 때? 당당하게 혼자 식당에 들어가 혼밥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커피 취향이 생크림 듬뿍 올린 카페모카에서 시럽조차 넣지 않는 아메리카노로 바뀌었을 때? 그것도 아니면, 난생처음으로 소주가 달게 느껴져 '아직 인생이 덜 쓰기 때문에 소주가 더 쓴 거다'라는 어떤 선조의 명언이 비로소 내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을 때?
일종의 통과의례들을 거쳐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하자.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되면 누구나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겨우 얻은 이 타이틀은 한번 얻으면 영원히 지닐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인가?
어른이 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단지,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보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더' 어른과 '덜'어른으로 나뉘기도 한다. 그것이 헛된 세월이던 헛되지 않은 세월이던 일단 해가 거듭할수록 가장 먼저, 가장 쉽게 쌓이는 것이 나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기에 있다. '어른'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백과사전에 정의된 것처럼 마냥 명쾌하고 정확한 개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른이기는 하지만 어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더 나아가 '더' 큰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더 '크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들 가운데 지나온 세월을 '양적인 조건'이라고 한다면 그 세월을 지나온 방식 즉, 세월의 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질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전자와 후자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냐라고 한다면 그것은 밑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글에서든 한 번씩은 찾아볼 수 있는 그 이름, '애티튜드'에 관한 것 말이다.
대개 전자(세월의 양적인 조건)를 우선시하는 어른에게 중요한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나이가 많냐' 와 '나이가 덜 많냐'의 차원이다.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이분법적인 차원이다. 이들은 '나이'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데 이것은 여러 유형의 밑 사람들을 단숨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해버리는 아주 강력한 무기이다. 따라서 폭력적인 것이 된다.'더'어른이기 때문이라는 명분 하에 '덜'어른에게 가하는 것들. 이를테면 성과에 대한 무시. 각종 사생활에 관한 지나친 관심, 훈계를 빙자한 '폭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세상의 진부함과 견고함 그리고 가부장성은 모조리 다 갖춘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문장은 덤이다.'나를 위한 말'인데 왜 나는 상처를 받는가?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건, 그들이 '더' 어른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답답함 혹은 화병뿐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말하는 사람만 존재하고 듣는 사람은 없는 아주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언제까지나 일 방향적인 대화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세월의 질적인 조건)를 우선시하는 어른에게 중요한 것은 '더' 어른이냐, '덜' 어른이냐의 이분법적인 차원이 아닐 것이다. 이들에게는 '어떻게' 어른이냐는 사실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라는 부사는 다른 말로 '문제 해결 방식'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소통'을 의미한다. 두 사람 이상이 대화를 한다고 해서 정의할 수 있는 소통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소통에 관한 것 말이다.
더 어른이라는 이유로 밑 사람의 성과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태도 , 개인과 개인 간의 동등성 위에서 함부로 상처 주지 않으려는 태도 더나아가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 등이 이에 동반된다. 이들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각각 온전한 개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쌍방향적인 소통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어른이다.
나이 들어감에 의해 필연적으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이왕 어른이 되는 거 나는 후자의 어른이고 싶다. 단순히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의 '어른 됨'을 주장하기에는 어딘가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편협한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어른 됨'을 갖추기까지 뭐든 많이 생각하고 읽고 배울 것이며 어느 순간 함부로 어른이 되어있지 않겠다고 미래의 나에게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