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가는 약국의 약사님이 키우시는 `겨울`이라는 강아지다. 이들이 왜 힘든가하면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그냥 너무도 아니고 너무너무너무 귀엽다. 백만 번도 외칠 수 있을만큼의 귀여움이다. 한마디로 치명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자주 심장에 무리가 온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 나는 무서운 것, 슬픈 것, 화나는 것에 모두 취약한 사람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귀여운 것에 약한 것 같다. 그래서 귀여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 살기가 참 힘들다. ⠀ 아무튼, 겨울이라는 이름이 새하얀 이유에서인가? 아니면 겨울에 태어나서인가? 등 그동안 이름에 대해서 혼자서 많은 추측을 하다가 결국엔 여쭤봤다.
이 아이는 사실 가을에 태어났기는 하지만 약사님께 왔던 계절이 겨울이었기 때문에 겨울이가 되었다고 한다.
명확한 유래에 대해 들으니 마음 한 쪽에 쌓아 두었던 일종의 미스터리가 비로소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름이라는 것은 대개 그렇다. 세상 유일무이하면서 견고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의 존재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동시에 주인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과 귀여움과 예쁨을 받을지, 그 사실 또한 눈에 선했다.
김춘수의 «꽃»에서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나'가 불러준 그의 이름을 통해 꽃이 되었듯 겨울이 또한 만남의 계절에 약사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으로 그에게 하나의 꽃이 되었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든 집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 의미를 혼자 곱씹다보니 어딘가 모르게 몽글몽글해졌다. ⠀
그가 산책하던 길 한복판에서 처음 마주쳤던 겨울이는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만 보면 온 동네를 떠나보내듯이 `왈왈`거리며 낯을 가렸다. 그 순간 오기가 생겼다. 한번 오기가 생기면 거의 끝장을 봐야하는 나는 이후로 약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와 안면을 트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도 겨울이 있어요?"
"겨울아~겨울아~언니 또 왔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겨울이의 행방을 묻기도 하고 나의 존재에 대해 들으라면서 혼자 대답하기도 하며 늘 촐싹거리는 행위로 겨울이를 찾곤 했다. 그 노력이 꽤 통했는지 요즘에는 내 눈을 지그시 보고서는 가만히 있기도 하고 이렇게 카메라를 잠시 들어 찍으려 해도 기어이 찍.혀.준.다. 심지어 내 무릎 위에 올라오기도 했다.
아주 가끔 내가 오바라도 하면 '당신,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야!'라는 눈빛을 하며 여전히 짖기는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그가 내게 마음속 한 공간을 마련해준 것만 같아 내심 뿌듯한 요즘이다.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는 경우보다 배신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