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아닌 계절을 타는 사람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이유 있는 감정 기복

어느덧 5월 말을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 며칠 전 친구와 통화를 했다. 요즘 날씨가 급 더워지고 있어서 싱숭생숭하다느니, 괜히 기운이 없고 우울하다느니, 여러모로 계절 타는 한탄을 하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이런 한탄은 한 계절에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년에 최소 네 번, 이래서 기분이 안 좋고 저래서 기분이 안좋다며 툴툴거리던 나의 중심에는 계절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들어야 깨달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매번 했던 잔소리가 있다.


또 시작됐네, 또 시작됐어

그렇다. 누구는 봄을 타고, 누구는 가을을 탄다지만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타는 사람이었다. 그러한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야흐로 동면하던 곰들이 깨어나고 숨죽였던 새싹이 고개 드는 생명력의 계절이다. 그만큼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온갖 것들이 동반된다. 이를테면 '새로운 학기', '새로운 학급', '새 학년' , '새 친구' 등이 그러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반갑기만 할 이러한 단어들을 나는 평생을 걸쳐서 아주 열심히 싫어했다. 새로움에 동반되는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소란스러움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매년마다 다시 돌아올 봄인데, 한번쯤은 그냥 차분하고 조용하게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몸서리쳐짐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것은 어쩌면 나의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되어 왔던 현상일 것이다. 익숙한 것, 자주 보던 것, 편안한 것을 가장 추구하는 나이기 때문에 무언가 바뀌고 바뀌는 것의 티가 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에게는 매우 부담이자 피로로 다가오는 것이다. 혹은 나 자체가 마냥 왁자지껄하고 발랄한 사람은 못되기 때일지도 모르겠다.


여름

그럴듯한 형용사를 붙여주고 싶지도 않은 계절이다. 지금은 참 양반이 되었지만 한겨울에도 내가 먹는 음료의 8할은 아이스인 만큼 나는 열도 많고 더위도 많이 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옷을 걸쳐도 더위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여름은 내 주체성을 무너뜨리는데 기여하는 대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더운 걸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으로 시원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내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곤 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계획을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잠시 내려놓는 때이기도 하다.


가끔 날씨의 영향력을 제칠 수 있을 만큼 행복한 일이 있으면 덜 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무기력함을 동반하게 하는 여름은 그 자체로 파괴적이다. 여름의 한창이라 할 수 있는 7, 8월에 나의 우울감은 거의 최대치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우울함의 수준이 아니라 화의 수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 자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분노에 차 있는 모습을 너무나 객관적으로 발견곤 한다.


가을

여름 바로 뒤에 놓인 까닭에 나를 우울하게 하는 계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온이 내려갈 기미는 안 보이고 이대로 영원히 여름일 것만 같아 더위의 무게라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가을은 찾아온다. 눈 뜨고 있을 때만 해도 분명 여름이었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가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이 허무하다. 그것도 미치도록 허무하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매일 나를 못살게 굴면서 장난치던 사람이 있었는데 하도 자주, 많이 보다 보니 소위 미운 정이 생겨 미운 정마저 애정으로 바뀌어 갈 때 즈음,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내 마음에 공허함만 남기고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만 같은 느낌. 이 공허함이 가을을 맞이할 때마다 드는 나의 심정이다.'이렇게 추워질 거 그렇게까지 더워야만 했는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아무런 공지도 없이 급변해버렸던 날씨가 반가우면서도 내심 서운하다. 그리고 이 공허함은 생각보다도 오래 지속된다.


인생에서도 그런 시기가 있다. 유난히 혹독한 어떤 시기를 겪고 나면 그 때가 죽을만큼 힘들었음에도 이후에 동반되는 내적인 성장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둘의 간극이 크다보니 이것이 일상에 미치는 또 다른 파급력으로 인해 한동안 무감각해지고 마는 것이다. 일종의 휴유증 같은 것이다. 가을은 내게 여름이 남기고 간 휴유증이 되어 한동안 나의 마음을 붕 뜨게 한다.


겨울

아마도 많은 사람이 손꼽을 축제의 계절일 것이다. 그 중심에는 생각만 해도 마냥 즐거울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가올 새해와 설날이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과 시작을 향한 기다림. 그리고 그것들을 위한 움직임. 그것들이 나는 늘 낯설다. 지난해와 올 해를 구분해내고 마는 일종의 이분법적인 모습이 불편한 이유이기도 하다. 끝에서 시작으로 향하는 변화에 따라 특정한 태도와 특정한 행동들이 요구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줄곧 부담스러움을 느낀다.


여기에 어김없이 동반되는 왁자지껄함과 소란스러움의 기운들 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봄에 느끼는 감정들과 비슷한 메커니즘이기도 하지만 약간은 다르다. 봄이 그 자체의 소란스러움이라고 한다면 겨울은 소란스러움을 맞이하기 위한 움직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나라는 사람이 한 해의 마지막을 매듭짓기엔 아직 미련이 가득하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한 탓에서 비롯된 '심술 맞음'일 지도 모르겠다. 함께 했던 '1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애착'이라고 해두는 것이 좋겠다. 이러한 이유에서 언젠가부터 나는 연초가 아닌 9월이 시작될 때 즈음에 새 다이어리를 구매하게 되었다.


각각의 계절마다 이유가 있게 하강하곤 하는 나의 감정선은 한국에 사계절이 버젓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그 모습과 그 유형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심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장 힘들어지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기에 계절의 변화가 시작될 즈음부터 내 생각과 감정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더 나아가 사계절마다 찾아오는 나의 감정 기복을 일종의 연중행사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말은 '감정 기복'일지라도 조금 더 특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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