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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며들다 Feb 07. 2023

할머니의 주머니

할머니가 생각나는 밤에...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속바지 안에는 허리 줌치(주머니) 있었다. 그것은 쪼이고 풀고   있던 복주머니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잠을 주무실 때만 빼고 할머니는 그것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셨다. 차고 다녔다는 말보다 그것이 할머니 허리에 붙어있는 캥거루의 아기집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땐 그 속에 뭣이 들었길래 저렇게 허리에 늘 꽁꽁 묶어 두셨을까? 궁금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지갑도 있고 가방도 있는데, 편하게 그걸 사용하시지 매일 허리에 차고 다녔던 그것이 불편하지도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든다. 그 속에서는 집 열쇠, 쌈짓돈, 귀중한 서류 같은 것들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언제나 빠짐없이 들어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재 소재로 된 하얀 손수건이었다.


할머니는 저녁을 드시고 나면 정리를 말끔히 하신 후, 꼭 그것을 준비해서 티브이 앞에 앉으셨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던 90년대 그 시절에는 부모 없이 크든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심심찮게 방송을 탔다. 그러면 우리 할머니는 그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어 꺼이꺼이 우시기 시작한다.


"쟈들이 어매도 없이 어째 저래 살꼬… 아이고 불쌍해서 쟈들을 우야노~"


어릴 적 내가 보아온 우리 할머니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셨다.

그 시절 그것이 이해가 잘 안되던 나는 '울 할매는 왜 또 저렇게 티브이 속 아 들만 보면 저래 우노~' 그땐 그것이 그렇게도 의아했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길러보니 그때 우리 할머니가 왜 그렇게 그 상황에서 동감을 하고 함께 우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요즘의 나 역시 다른 이야기들 보다 유독 어린아이들이 부모라는 울타리없이 힘들게 자라나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는 뭔가가 나도 모르게 불쑥 눈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입장이, 그 부모들의 입장이, 내게 너무나 가깝게 다가와 한동안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아마도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어린 시절의 나보다 타인을 좀 더 들여다보는 눈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도 어쩌면 조금 더 다가가려 노력을 한다면, 이해하려 한다면, 가능해지는 그것이 어른이 가지는 힘이자 특권이지 않을까?


1990년 할머니의 허리 줌치 속 그 물건들이 2023년 지금의 나에게, 그 시절 손주들을 향한 할머니의 마음을 들려주는 것 같다. 그렇게라도 돌아가신 할머니를 다시 떠올려 보는 글쓰기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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