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생각나는 밤에...
어린 시절 울 할머니의 속바지 안에는 허리 줌치(주머니)가 있었다. 그것은 쪼이고 풀고 할 수 있던 복주머니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잠을 주무실 때만 빼고 할머니는 그것을 늘 허리춤에 차고 다니셨다. 차고 다녔다는 말보다 그것이 할머니 허리에 붙어있는 캥거루의 아기집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땐 그 속에 뭣이 들었길래 저렇게 허리에 늘 꽁꽁 묶어 두셨을까? 궁금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지갑도 있고 가방도 있는데, 편하게 그걸 사용하시지 매일 허리에 차고 다녔던 그것이 불편하지도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든다. 그 속에서는 집 열쇠, 쌈짓돈, 귀중한 서류 같은 것들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언제나 빠짐없이 들어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재 소재로 된 하얀 손수건이었다.
할머니는 저녁을 드시고 나면 정리를 말끔히 하신 후, 꼭 그것을 준비해서 티브이 앞에 앉으셨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던 90년대 그 시절에는 부모 없이 크든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심심찮게 방송을 탔다. 그러면 우리 할머니는 그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어 꺼이꺼이 우시기 시작한다.
"쟈들이 어매도 없이 어째 저래 살꼬… 아이고 불쌍해서 쟈들을 우야노~"
어릴 적 내가 보아온 우리 할머니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셨다.
그 시절 그것이 이해가 잘 안되던 나는 '울 할매는 왜 또 저렇게 티브이 속 아 들만 보면 저래 우노~' 그땐 그것이 그렇게도 의아했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길러보니 그때 우리 할머니가 왜 그렇게 그 상황에서 동감을 하고 함께 우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요즘의 나 역시 다른 이야기들 보다 유독 어린아이들이 부모라는 울타리없이 힘들게 자라나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는 뭔가가 나도 모르게 불쑥 눈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입장이, 그 부모들의 입장이, 내게 너무나 가깝게 다가와 한동안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아마도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어린 시절의 나보다 타인을 좀 더 들여다보는 눈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도 어쩌면 조금 더 다가가려 노력을 한다면, 이해하려 한다면, 가능해지는 그것이 어른이 가지는 힘이자 특권이지 않을까?
1990년 할머니의 허리 줌치 속 그 물건들이 2023년 지금의 나에게, 그 시절 손주들을 향한 할머니의 마음을 들려주는 것 같다. 그렇게라도 돌아가신 할머니를 다시 떠올려 보는 글쓰기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