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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며들다 Feb 07. 2023

엄마가 책을 읽으면 생기는 일

자신의 입장이 있는 엄마



막내를 임신했던 2015년 그 해 겨울, 한 교육 사이트의 정보를 통해 부모교육을 들었다. 지금은 꽤나 유명해지신 분이시지만 그 당시에는 그 강연장엔 10명이 채 되지 않은 엄마들이 모여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강연장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강사님의 강의에 만발의 필기 준비를 하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분의 큰 딸은 공부를 내로라하게 잘하는 일명 영재라고 했다.

"저희 큰 딸은 요~"라며 운을 떼시는데 난 당연히 내가 스쳐온 그 많은 모범생들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저녁 먹고 땡 공부하는 그 아이를 위해 숨소리도 죽이며 간식을 사식 넣어주듯 제시간에 공부 방으로 갖다 바치며 '넌 공부만 해 엄마 아빠가 다른 것은 다 할게... '라는 그 장면을 상상했고, 당연하게 그 비슷한 말이 나올지 알았다. 내가 알고 있는 공부 꽤나 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그러했기에... 그리고 그 비법을 노트에 옮겨 적으려는 그 순간,


"주말이 되면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만화를 그립니다."


'오잉?'


늦잠? 만화? 뭐지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내가 뭘 잘못 알고 온 것인가? 평일엔 물론이고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독서실을 가던지, 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한다? 뭐 이런 말을 당연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늦잠을 거하게 주무시고 만화를 그리신다고라??


집에 와서 그분의 저서를 주문해 읽기 시작했다.

아이의 위대함을 끌어내는 힘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세요."


그분이 던져주신 그 메시지의 파장은 7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우리 세 아이를 키우는 모토로 자리 잡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회가 정해둔 보편적인 관념들이 어느 순간 말없이 들어와 내 자리를 꿰찬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양육자, 선생님, 모임에서 목소리 제일 큰 사람... 그 사람들의 검증 없는 방식들을 의심 없이 필터링 없이 나에게도 계속 적용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관념은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상속하듯 적용된다.


며칠 전, 글쓰기 카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힘들다 하시는 분이 계셨다. 나 또한 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목소리를 내려면 일단 좋던 나쁘던 내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 입장이라는 것은 내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생길 수가 없다. 밥을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배고픈 자의 마음을 알 것이며 폭행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미투를 하는 그 심정을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지 않았던 그 시절에 나는 사회가 원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만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모난 돌이 정 맞으면 안 되니 멀찌감치 서 보는 게 제일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을 듣는 게 제일이었고, 나에게 부당한 것들도 그냥 내가 한번 참으면 되었다. 그리고 뒤에서는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한번 들어보라며 당사자들이 없는 곳에서 필터링 없는 험담을 일삼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정작 앞서서 내 입장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입장을 만드는 일이다.

나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의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계속 나를 업데이트한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은 물론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 일들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자연적으로 주어진다. 그렇게 내 입장, 너 입장이 뒤 섞여 여러 가지 입장들이 나온다. 아~ 너라면 그럴 수도 있구나! 내가 알고 있던 그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틀릴 수도 있구나!라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긴다.


엄마가 책을 읽게 되면 엄마로서의 입장이 선다. 처음부터는 어렵겠지만 서서히 확고화된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사회가 정해 둔 그 시기에 해야 하는 것, 국민이라는 말의 탈을 쓴 사교육 시장의 횡포, 맹목적이고 보편적인 관념들에서 벗어나 내 아이를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서 엄마의 시선이 오래 머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라면 알아차리기가 쉽다. 그리고 엄마의 입장이 서는 만큼 아이의 입장을 설 수 있게 돕는다. 낮잠을 자도 만화를 그려도 화딱질이 나지 않고 버럭을 하지 않을 그 단단한 힘이 내면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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