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이 망가지는 이유

by 스웨지니

그 대표님을 믿지 마세요


주니어 시절 나는 10명 규모의 작디 작은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입사했다. 대표님은 40대 초반의 아저씨였는데, 서글서글한 표정와 부드러운 말투를 가진 분이었다. 면접 때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실제로 겪어보기 전엔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면접에서는 그렇게 유쾌하고 성격 좋아 보이던 사람이 같이 일해보니 대단한 또라이였던 경우를 직전 회사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작은 회사였기에 주니어 마케터인 나도 매주 그와 회의를 했고, 많은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젊은 여자 이사님과 셋이서 유럽 출장을 가서 오손도손 함께 일주일을 지내기도 했다. 그만큼 겪어 보아도 이 분은 처음에 받은 인상과 같이 좋은 사람이었다. 서비스가 좀처럼 성장을 이루지 못해도 팀원에게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적할 때도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을 고르며 조곤조곤 말했다. 나처럼 어리고 경험이 적은 마케터에게도 항상 정중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었다. 나는 그분의 성품을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 개발자분이 대화할 기회만 나면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셉을 너무 믿지 마요. 지니가 모르는 뒷모습이 있어요.”

“솔직히 우리 서비스는 미래가 없어요. 이게 수요가 있는 거면 대기업에서 진작 했겠죠.”


조셉은 대표님이 회사에서 쓰는 영어이름(가명)이고, 지니는 나다.


그 개발자분은 우리 서비스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점치며, 조셉은 항상 어리석은 결정을 하면서도 고집만 센 대표이고 투자금이 바닥나면 팀원들의 월급과 퇴직금까지 끌어다가 배팅을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나를 위해, 회사의 은밀한 속사정을 알려준다는 듯이. 마냥 조셉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놀랐고 혼란스러웠다. 조셉, 내가 본 것과 다른 사람이었나?


그 한 사람만이었더라면 '에이 설마' 하고 말았을 텐데, 언젠가부터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점차 사람들은 모이면 조셉을 험담하고 이 서비스가 얼마나 가망이 없는지를 이야기하며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모두 같은 생각은 아닐 수 있지만, 한 번 냉소적인 뒷담화가 시작되자 모두가 쉽게 물들어갔다. 똑똑하고 합리적이라면 조셉과 우리 서비스의 허상을 꿰뚫어보고 있어야 한다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내가 순진해서 조셉의 진짜 얼굴을 몰랐고, 이 서비스가 얼마나 망조인지 몰랐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웃으며 동조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개발자 팀원들이 조셉을 싫어하니 나도 조셉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고, 그의 얼굴을 보는 게 껄끄러워졌다.


사실 나는 조셉과 관계가 좋았고 그를 험담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가 완벽한 사람은 아닐 테고,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살 만한 행동을 했을지 몰라도, 내가 볼 때는 대표의 권위를 휘두르지 않고 팀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자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고 나에게 나쁘게 대한 적도 없다. 오히려 여러모로 부족하기만 한 주니어 시절의 나를 품어준 고마운 대표님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속절없이 휩쓸려갔던 것이다.


그 시기, 회사는 돈이 떨어져갔고 서비스의 성장도 더뎠기에 다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보였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재택근무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들이 오갔다. 혼란스러운 와중, 우리 서비스는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의 수혜를 입어 신규사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에 조셉이 기쁘게 이 소식을 알렸지만, 이미 부정적인 바이러스가 휘감은 팀의 분위기는 스산하기만 했다.




팀의 정화를 가져온 의외의 결말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재택근무를 몇 달이나 하고, 새로 투자를 받은 우리 팀은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가게 되었다.


상황이 많이 좋아졌음에도 프로험담러는 멈추지 않았다. 그쯤 되니 나도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지겨워졌다.

그러는 동안 수 개월이 흘렀고 나도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지나 조셉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팀원들의 머릿속에 의심과 불안감을 심는 말을 쉼없이 쏟아내는 시간 동안, 조셉은 서비스를 지속하고 팀원들을 책임지기 위해 쉼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누가 맞고 틀리고를 가려낼 필요도 없다. 그저 누구의 말이 아닌 내가 보고 겪은 대로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고, 무슨 계기였을지 모르나 험담을 주도했던 개발자분은 어느 날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았다. 정확히 어떤 명분으로 내보냈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모두가 있는 곳에서 웃으며 마무리 인사를 나누고 떠나기는 했다. 그래도 함께 일하던 동료였기에 그 날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모든 뒷담화 바이러스의 중심에 있던 그가 사라지고 나니, 지워지지 않던 얼룩이 하얗게 정화되어 사라지듯이 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이상 모일 때마다 회사 욕이며 대표 욕을 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거짓없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우스갯소리를 나누게 되었으며, 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력이 넘쳤다. 계속되는 코로나 웨이브로 재택과 출근을 번갈아 했는데, 재택하면 편해서 좋았지만 출근을 하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재미있어서 좋았다. 결국에는 그가 저주하던 것처럼 우리 서비스는 접게 되었지만, 조셉은 그의 말과 달리 누구의 뒤통수도 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팀원들을 책임질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자신의 창업 도전을 마무리했다.


나도 그 팀을 떠나온지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의 팀과 함께 했던 팀원들에게는 희석되지 않는 단단한 애정이 있다. 그리고 조셉은 지금까지도 내겐 더없이 고맙고 뜻깊은 인연이다. 물론 그를 싫어하던 개발자들의 말이 모두 지어낸 소리는 아닐 테니, 그는 함께 일하기에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아니고 내가 모르는 흠결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내가 2년 반 동안 경험한 그 사람은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준 훌륭한 성품의 대표님이었고, 그의 관용에 많은 신세를 졌고 마무리까지 좋았는데, 내가 보지 않은 그 사람의 단점까지 굳이 짐작해가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 아무 유익이 없다.




회사의 분위기는 어떻게 곪아가는가


그 후 나는 새 회사로 이직했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재밌게 수다를 떨고 장난 치며 즐겁게 일했다. 상사나 동료에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더라도, 서로에 대한 나쁜 말은 누구도 공공연히 꺼내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운 상사가 왔다. 모두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가고 있던 시기, 한 사람이 새로 온 상사를 조롱하는 말을 대놓고 하기 시작했다. 상사 뒷담화라는 건 또 얼마나 쉽고 재미있던가. 사람들은 순식간에 거기 물들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에도, 슬랙 DM에서도, 모이기만 하면 그런 이야기로 속닥속닥 수다를 떨며 즐거워하는 팀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이렇게 기시감이 들 수가 있나. 이번에는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흔들리지 않고 무게중심을 잘 잡을 차례였다. 재미있는 건, 그 조롱과 험담의 대상인 상사도 조셉과 비슷한 데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표현 방식이 유한 사람이었다. 좋은 피드백도 나쁜 피드백도, 정중하고 부드럽게 전달한다. 권위를 이용해 남을 짓누르거나 거칠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렇게 남을 대한다면 미움 받을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들 뒤에서 신랄한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상사라는 직책의 무게일까? 설마 상사의 권위를 쓰지 않고 부드럽고 정중하게 대하니까 더 만만하게 느껴져서 이러는 걸까?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나는 그 새로 온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실제로 그가 얼마나 진실되고 좋은 사람인지, 경험한 시간이 짧으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건 스스럼 없이 그를 판단하고 미워하는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비열하고 어리석은 사람이기만 할까? 결코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매일 같이 부정적인 대화에 참여해 마지못해 동조하면서, 이 마이너스 에너지에 같이 끌려 들어갈까봐 두려웠다. 그를 열렬히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 그 분위기에서, 혼자 착한 소리를 하기란 쉽지 않다. 소신껏 나는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큰 규모의 투자를 받고 나름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었지만 회사의 문화는 험담과 불평이라는 곰팡이가 슬어 곪아가고 있었다. 팀원들 개개인은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이라 나는 그들을 무척 좋아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여서 무언가를 욕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팀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는 전 회사보다 문제가 깊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시작했던 사람이 퇴사하고 나서도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회사 욕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매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이렇게 바보 같은 경영진이 이끄는 망해가는 서비스를 위해서 고민하며 열정적으로 일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런 회사를 위해 진심으로 애쓰는 게 우스워진다.


매주마다 한둘씩은 퇴사자가 나왔고 내 옆자리 팀원도 언제 나갈지 모르는 분위기였다. 회사의 분위기를 개선하고 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엔, 나 역시 이 회사에 그만한 애정이 있지는 않았다. 입사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이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곳에서 내 삶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퇴사를 했다.




그 후 면접에서 ‘같이 일하기 힘든 동료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주저 없이 ‘불평이 많은 사람’이라고 답하게 되었다. 일을 못하는 사람도, 느린 사람도 겪어봤다. 답답하지만 괜찮다. 그게 나를 뭐 얼마나 힘들게 한다고.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치명적이다. 불평과 험담은 바이러스 같은 힘을 지녀서, 손 쓸 틈도 없이 퍼져나가 온 팀의 분위기를 해치고 나 자신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내가 머무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배운다.


내가 속한 곳을 더 아름답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바이러스를 퍼뜨리거나 그 확산을 돕는 사람은 되지 말자. 뒷담화는 재미도 있고 짜릿한 화젯거리지만, 그야말로 마약이다. 쉽게 중독되고, 모든 것을 망쳐놓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자. 오로지 내가 보고 겪은 대로만 생각하자.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비난하더라도 그들의 생각이 꼭 옳거나 정당하지는 않다.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할 판에,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나에게 잘 대해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말아야 한다.


이 때의 경험과 배움은 내게 어찌나 깊은 인상으로 남았던지,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머릿속에 비상벨을 울려준다.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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