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사회 8

제 8장

by 한승우

그날 밤 나는 집에 들어가 온갖 잔소리를 들었다. 우리 가족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달리기 연습하러 초원에 다시 잘 나가라고. 원래 삶이란 건 다 힘든 거라고. 힘든데 다들 꾹 참고 사는 거라고. 우리 사회에서 달리기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1,2등급 무리에 가입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동물 노릇을 할 수가 없다고.

우리 가족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겁을 주며 내가 사회에 적당히 맞추어 살기를 바랐다. 그동안 내가 꾹 참고 그래온 것처럼 모두가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는 너무 답답해서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내일 만약 죽는다면, 내일이 내 삶에 있어서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내 소중한 하루를 초원에서 힘든 것을 꾹 참아가며 달리기 연습이나 하면서 보내고 있을까?”

그러자 엄마는 어이없는 듯 이야기했다.

“너의 인생은 절대 내일 하루로 끝나지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달리기 연습하러 초원에 잘 나가라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니까 말 좀 들어. 네가 내 아들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거지 남이였으면 이렇게까지신경도 안 써!”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며 지쳐있는데.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살아가고 싶지가 않은데. 차라리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가 않는데. 그깟 달리기가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건지. 여전히 대화가 전혀 통하질 않는다.

“엄마 나는 그냥 행복하고 싶어. 다른 건 없어 그게 다야.”

“1, 2등급 무리에 속하지 못하면 대체 3등급짜리 어린애가 뭐하고 먹고살 건데? 당장 내가 식량 안주면 생활도 못 하면서. 결국엔 다 식량이라고 식량.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식량이야. 그러니까 행복해지고 싶으면 일단 꾹 참고 달리기 연습이나 열심히 하라고!”

나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엄마한테 화를 냈다.

“또 식량이야 식량? 또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이거야? 식량이 그렇게 중요해? 우린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거야?”

엄마는 한숨을 쉬며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나를 현실에서 동떨어진 철없는 어린아이로 보는 듯했다.

‘엄마! 꿈을 좇는 동물에겐 식량이 그 뒤를 따르게 돼 있다니까요. 행복이 그 뒤를 따라올 거라구요!’라고 엄마한테 이야기해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면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알기에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있자 엄마는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달리기 연습해온 세월이 얼만데. 그게 아까워서라도 1년만 더 참아. 이제 1년이면 너 20살이잖아. 그리고 열심히 하라고도 말 안해. 그냥 어느 정도 적당히 해서 2등급 그룹에라도 들어가.”

나는 이 말들이 더 이상 와 닿지가 않았다. 모두들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하면서 다들 하루하루를 힘들게 참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니. 1등급 그룹의 사냥꾼들마저 요새는 사냥감이 많이 없어져 힘들어하고 있다니.

내가 평생동안 지켜봐 온 나와 제일 가까운 1등급 그룹의 사냥꾼 중 하나인 우리 엄마, 아빠의 삶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모두들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다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참고 살아간다는 게. 그리고 매달의 끝에 식량이 주어지면 그걸 행복으로 여긴다니. 나는 우리 사회가 동물들의 정신을 보이지 않는 너무도 단단한 쇠사슬로 구속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우리 사회 안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나를 칭칭 묶어 구속하고 있는 단단한 쇠사슬이 너무도 무겁고 아프고 답답하게 느껴졌기에. 그래서 나는 나를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을 끊어 있는 힘껏 집어던지고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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