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사회 9

제9장

by 한승우

일단 집을 나왔는데 나에겐 갈 곳이 없었다. 식량도 잘 곳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멈추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앞을 향해서 걷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쉴 새 없이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걷다 보니 내 뒤로 더 이상 우리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거라곤 잠시 물 한 모금 마시며 쉬어갈 곳 하나 없는 드넓은 초원뿐이었다. 참 절망적이었다. 나는 대체 얼마나 걸어온 걸까.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길을 잃은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감쌌다. 겁이 났다. 그냥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 왠지 이 여정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그래서 나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앞을 향해 걸었다. 나는 너무도 지쳐있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엄마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나는 부모 도움 없이는 당장 식량 하나 구하지 못하는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태양은 어느새 주황빛을 띠며 서서히 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선 채 호흡에 집중하며 그 아름다움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잠시나마 그 짧은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느새 해는 땅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캄캄한 어둠이 나를 감쌌다. 밤이 내게 찾아왔다.


그동안 마을에 있을 때는 사냥개들이 마을을 지켜주어서 한 번도 밤을 걱정한 적이 없지만 오늘 밤만큼은 나의 안전이 순전히 나 스스로에게 달려 있었다. 나는 평생을 달리는 연습만 해왔는데. 나를 다른 동물들로부터 지켜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여태껏 내가 평생 동안 배워온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달렸을까. 나는 우리 사회에 너무도 길들여져 있었구나. 결국, 나는 우리 마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나 스스로도 지킬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다른 동물들의 사체를 얼마나 많이 봐 왔는가. 다른 동물이 지금 나를 공격해온다면 나는 끔찍하게 찢겨 죽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두려움에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지금 눈앞에 놓인 나무에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또다시 내 두 발과 두 날개가 너무도 미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의 네 발 달린 녀석들은 이런 나무 정도야 거뜬히 오를 텐데. 그래서 나는 너무도 지쳐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었다. 그렇게 어두운 공기 속에서 나는 계속하여 걸었다. 참으로 고독했다. 평생을 살아온 우리 사회의 사람들 중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 없으니. 가족들마저 나를 잘못됐다고 여기고 바보로 여기니.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길이였다. 외롭고 무서웠다. 알 수 없는 슬픔과 우울함이 내게 찾아와 나를 강하게 짓누르기도 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또다시 찾아왔다. 죽으면 이 힘든 순간도 끝나고 편안하게 쉴 수 있을 테니까. 또 이렇게 고통스러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순간 내 삶을 포기했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초원 한가운데에 누워있으니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나는 나를 짓누르던 두려움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고 죽음을 기다리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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