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미의 일기

나는 귀여운 아기비숑

by 주디의 작은 방

나는 2020년 5월 8일, 이름도 없는 시골 마을의 비좁은 철창 안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곳을 ‘강아지 농장’이라 불렀지만, 우리에겐 그저 세상에서 가장 답답하고 어두운 감옥일 뿐이었다. 매달 날짜를 맞추어 새끼를 낳는 곳. 인간들이 숫자처럼 계산하는 그 주기에 맞춰, 우리 엄마는 벌써 네 번째 새끼를 품고 있었다. 아직 몸집도 작고 얼굴에선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엄마는 이미 여러 번 아이를 낳고 또 빼앗겨야 했다.

밤이면 엄마는 작은 숨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미안해, 아가야. 여기서 널 지켜줄 수가 없어.”


그 말끝에 묻어나는 서러움과 체념을 나는 알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걸.

철창도, 숫자도, 사람들의 차가운 손길도 결국 나를 가두지 못할 거라는 걸.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곳에서 엄마의 목줄을 풀어줄 날이 올 거라는 걸.

아직 작고 연약한 몸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커다란 탈출 지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종종 “솜사탕 같다”며 웃었다.

손가락으로 내 등을 툭툭 건드리며 “폭신폭신하네”라고 말할 때면, 나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마냥 좋은 일이려니 생각했다. 사실 미용을 하지 않으면 내 하얀 털은 눈까지 덮어버려, 누가 봐도 작은 삽살개처럼 덥수룩해진다. 철창 속에 있을 때는 아무도 내 털 따위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뭉친 털 사이로 작은 벌레가 기어 다녀도, 사람들은 그저 다음 달 새끼나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엄마’는 달랐다.

처음 나를 안아 올린 그날, 엄마는 조심스럽게 내 털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너, 눈이 보이긴 하니?”


그 따뜻한 목소리에는 철창 안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온기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반짝이는 황금색 유리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미용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나는 처음 보는 도구들과 환한 조명 아래, 사람 손길이라는 것이 이렇게 부드럽고 정성스러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작은 가위가 내 털을 조심스럽게 다듬을 때마다, 내 눈에 세상이 점점 환히 열려갔다.

내 털이 곱슬곱슬하게 말려 있다는 이유로, 눈에 찔릴까 걱정하며 나를 미용실로 데려가 준 인간 엄마.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세상에는 나를 ‘귀찮은 짐’으로 보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해 줄 엄마도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엄마를 지키는 강아지가 되겠다고.

그 작은 품 안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 깊숙한 곳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엄마와 함께 있던 그 짧은 시간.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던 나를 감싸 안아주던,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의 품속.

나는 형제들과 옹기종기 모여 엄마의 젖을 물고, 배가 부르면 그대로 엄마의 배를 베개 삼아 잠들었다.

엄마의 심장은 느릿하게 울렸고,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세상이 참 평화롭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은 참 짧았다.

엄마와 나는 겨우 ‘한 달 반’ 정도의 거리에서만 함께 있었다.

그 작은 거리조차도 내게는 세상을 모두 품은 것처럼 아득히 넓고 포근했지만, 결국 우리는 그 한 달 반을 끝내 넘지 못했다.

철창 너머로 손이 들어오고, 형제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결국 엄마의 품도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울지도 못한 채, 엄마의 체온이 남아 있는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행복이라는 건 잔인하게도 끝을 알 수 없는 음악의 선율과도 같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꿈속에서 엄마의 품을 찾아간다.

하얗고 보드라운 엄마의 배를 베고, 다시 한번 쌔근쌔근 잠드는 꿈을 꾼다.


달콤했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의 품이 내 세상의 전부라고 믿던 어느 날,

덜컥, 철창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이놈은 서울로 보내야겠어. 강남 애견샵에서 돈 좀 되겠군.”


농장주 아저씨의 투박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엄마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몸을 낮추는 걸 보고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했다.

아직 엄마 젖도 다 못 먹었는데, 나는 그저 엄마 옆에 조금 더 있고 싶었을 뿐인데.

하지만 세상은 그런 내 바람 따위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농장 전용 수의사라는 사람이 와서 내 몸을 이곳저곳 만지며 말했다.


“튼튼하네요. 매우 건강함. 합격입니다.”


그 한마디가 마치 나를 물건처럼 포장하는 낙인 같았다.


그렇게 나는 작은 철장 안에 담겨, 번쩍이는 검은색 차 트렁크에 실렸다.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농장과 엄마의 모습이 흐릿해질 때까지, 나는 작은 몸으로 철창 구석을 파고들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서울 강남의 애견샵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감옥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 나는 작은 케이지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길고 긴 길을 달리는 동안, 내 작은 세상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차가 멈추고, 나는 투명한 벽으로 사방이 막힌 작은 아파트 같은 곳에 갇혔다.

203호- 그게 내가 배정받은 새로운 집이었다.

그곳은 겉보기엔 반짝이고 예쁜 집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숨이 턱턱 막히는 유리 감옥이었다.

달릴 수도, 숨을 쉴 수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엉엉 울고 말았다.


“흠, 신입이군.”


옆 칸에서 새침해 보이는 포메라니안 누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의 털은 완벽하게 빗질되어 있었고, 태도에는 어딘가 고급스러운 냉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멍멍.”


그 짧은 한 마디에 담긴 뜻을 나는 금세 알아챘다.


‘울지 마. 울어봤자 여기선 네 얘기를 들어줄 사람 없어. 차라리 조금이라도 주는 밥 먹고, 기운 빼지 말고 잠이나 자렴.’


그 말은 누나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쓴 현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누나의 그 말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마치 이 감옥에서도 나를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내 심장을 조용히 달래주었다.

나는 눈물 젖은 코끝을 닦고 작게 속삭였다.


“... 고마워요, 누나.”


그날 밤, 나는 엄마 생각을 품고, 옆 칸 포메라니안 누나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처음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203호에서 지낸 지 아홉 번째가 되던 날, 나는 내 인생을 바꿔줄 사람들을 만났다.

문이 열리고, 따뜻한 손길이 내 작은 몸을 감싸 안았다.


“어머, 얘 좀 봐. 솜사탕 같아.”


엄마가 내게 웃어주었다. 그 미소는 농장에서의 찬바람과도, 애견샵의 차가운 조명과도 달랐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 이 손은 나를 사러 온 게 아니라, 사랑하러 온 손이구나.’


잊었던 봄날의 햇살이 내게 다시 찾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두 형들도 내게 말을 걸었다.


“이름은 뭘로 하지?”

“이제 우리 동생이야.”


나는 그들의 목소리 속에서, 엄마 품속에서 들었던 심장 소리와 비슷한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강아지였다.

내 옆 칸에 있던 포메라니안 누나도, 옆동의 갈색 푸들 형님도 이곳에 온 지 벌써 다섯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웃어주면서도, 그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축하해, 꼬맹아. 너는 나갈 수 있게 됐네.”


포메 누나는 기특하다는 듯 내 머리를 쓱 문질렀다.


“하지만 우린... 글쎄, 한 달만 더 지나면 우리 운명은 아무도 몰라.”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겨우 여섯 달을 살아본 강아지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의 잔혹함을.

나는 그날 밤 내내 고민했다.

나는 살아남았다. 엄마 품을 떠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새로운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누나와 형님은?

농장에 남아 있는 내 진짜 엄마는?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나는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엄마를 구하러. 모두를 구하러.


엄마와 형아들이 샵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눈을 꼭 감고 쌔근쌔근 자는 척을 했다.

괜히 애처롭게 낑낑댄다고 해서 내 운명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애견샵에서 살아남으려면 때로는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마음까지 숨겨야 한다는 걸 포메 누나가 이미 내게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내 귀는 작은 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유리벽 너머로 들려오는 형아들의 목소리가 똑똑히 내 귓속을 때렸다.


“난 비숑이 좋아.”


형아의 목소리는 어린애 특유의 투명함과 단호함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나는 내가 비숑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내게 그랬다.


“넌 하얗고 둥글둥글한 비숑이야. 솜사탕처럼 말이지.”


그 말을 들었을 때보다, 지금 형아의 말이 더 크게 가슴에 박혔다.

그들은 계속 얘기했다.


“이 아이는 눈이 안 보이네.”

“자고 있어서 그런 거야?”

“귀엽다, 만져봐도 되나요?”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긴장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가슴속에서는 작은 심장이 콩콩 뛰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 세상과 단절된 척.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내 등에 닿았다.

그 손은 농장주 아저씨의 거칠고 차가운 손과는 달랐다.

나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지금의 ‘엄마’를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엄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치 영웅담처럼 내 입양 이야기를 꺼내신다.


“아니, 우리 큰애가 2학년 때 말이야. 학교 앞에서 천 원 주고 병아리 한 마리를 사 왔지 뭐야.”


엄마는 그때마다 손짓을 크게 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는 그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학교 앞 작은 상자 속, 어린 병아리 한 마리가 엄마의 새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오게 되었던 이야기.

그 병아리가 사흘 만에 조용히 숨을 멈췄고,

큰 형이 세상을 잃은 듯 울부짖으며 학교도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는 이야기.


“결국 엄마가 약속했지. 강아지 사줄게- 그렇게 덜컥.”


엄마는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나는 안다.

그 병아리가 형의 손에서 얼마나 작은 생명이었는지,

엄마가 그 작은 몸짓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결국 나를 이 가족에게로 데려왔다는 걸.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왜 하필 나였을까.’


그 질문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선택받은 게 아니다.

나는 이 집에 오기 위해 태어난 거다.

엄마와 형아들의 품속에서, 나도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 온 거다.

농장에서 애견샵에서 엄마와 포메 누나, 푸들 형님과 나눴던 약속이 마음속에서 다시 뜨겁게 살아났다.

나는 여기서 힘을 키워야 했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엄마를 구해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구해진 존재’에서 ‘구하는 존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는 특별한 강아지이다.

정말, 정말 이건 비밀인데 나는 인간과 말을 할 수 있고, 하늘을 날 수 있다.

작고 동그란 내 머리털을 모두 세우고


“휘리리 마리리!”


마법 주문을 외우면,

솜사탕처럼 폭신한 내 몸뚱어리가 두둥실, 별빛 가득한 밤하늘로 살며시 떠오른다.

하지만 이 마법은 절대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

인간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 명이라도 깨어 있으면, 몹시 곤란하니까.

비밀이 들통날까 봐 숨죽이며 조심해야 한다.

밤하늘 위로 떠오를 때면, 바람이 내 털 사이를 스치고, 달빛이 내 몸을 포근히 감싼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

이 비밀스러운 능력은 나에게 엄마를 구할 수 있는 희망이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