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건 못 참지.

난 참지 않아.

by 주디의 작은 방

나는 내 나름의 식사 규칙이 있다. 가족들이 밥을 먹을 때, 나도 반드시 같이 먹는 것이다. 이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세운 약속이기 때문이다.

난 똑똑한 타쿠미니까.

아무리 배가 고파서 속이 비어 허전해도, 나는 참는다. 가족들이 아침식사를 시작할 때까지는 절대 입을 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다. 식사라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밥 냄새가 차오르는 부엌에서 엄마가 국을 푸고, 형아들이 서로 장난을 치고, 아빠가 식탁에 앉는 순간이 나도 밥을 먹을 시작 시간이다. 나는 그 시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다린다. 나의 작은 배가 꼬르륵거려도, 이건 내 역할이자 의식 같은 거다.


드디어 숟가락 소리가 나고, 젓가락이 부딪히는 순간이 오면, 나는 앞발을 내 밥그릇으로 뻗는다.


"달그락, 달그락"


내 발톱이 그릇을 긁는 소리는 종소리처럼 맑다.

엄마가 웃으며


“타쿠미도 밥 달라고 하네”


하고 말하면, 나는 꼬리를 흔들며 의기양양하게 밥그릇 앞으로 나선다.

나는 가족들의 숟가락이 오르내리는 속도를 눈으로 좇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나도 함께 밥을 먹는다. 그렇게 먹다 보면, 마치 우리가 모두 같은 테이블 위에서 똑같은 리듬으로 호흡을 맞추는 것 같다. 나는 강아지일 뿐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다.


하지만 가끔은 쉽지 않다. 특히 아빠가 구운 고기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질 때면, 내 꼬리는 저도 모르게 제멋대로 흔들리고, 눈은 번쩍 커진다.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이면 내 배 속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아직… 아직이야.”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써 버틴다. 룰은 지켜야 하니까. 가족들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나도 절대 입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냄새는 마치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점점 짙어진다.

결국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앞발로 밥그릇을 긁는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릇이 앞으로 밀려 나가다 탁 멈출 때면, 마치 내 마음이 미끄러졌다가 간신히 멈춘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타쿠미, 또 참지 못하겠어?”


그제야 나는 작정한 듯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눈을 반짝인다. 규칙이고 뭐고, 지금은 고기의 향기가 나를 집어삼킬 듯 강렬하다. 나는 결국 내 밥그릇 앞에 엎드려, 가족들이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먼저 고개를 쿡 박아 넣고 만다.

그 순간 형아들이 깔깔 웃고, 아빠는


“이 녀석, 오늘은 졌네”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혀를 낼름이며 고개를 든다.

그래, 맞다. 오늘은 내가 졌다. 결국 나 타쿠미는 맛있는 건, 참지 못한다.


엄마는 혹시라도 내가 가족들 외출한 사이에 굶기라도 할까 봐, 한쪽에는 예약된 시간에 밥이 나오는 자동급여기를 두셨다. 반대편, 가족들 식탁 옆 바닥에는 격조 있고 우아한 도자기 밥그릇 세트를 차려두셨다. 마치 나만의 정식 자리라도 마련해 주신 듯, 반짝이는 그릇은 햇살을 받아 은근한 빛을 뿜어냈다.

자동급여기는 아침 일곱 시, 저녁 일곱 시가 되면 어김없이 목소리를 냈다.


“타쿠미, 밥 먹어. 타쿠미 밥 먹을 시간이야. 타쿠미, 밥 먹어. 타쿠미 밥 먹을 시간이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기계음은 식당 종소리처럼 집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그 부름에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자동급여기가 제때 사료를 내놓는다 해도, 그건 내 마음이 원하는 식사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신념이 있는 타쿠미니까.

내 룰은 단 하나다. 가족이 식탁에 앉을 때, 나도 같이 앉아야 한다.

그래서 자동급여기가 아무리 말해도, 나는 그저 앞발로 살짝 밥그릇을 긁을 뿐이다.

내 진짜 식사 시간은 그 기계가 알려주는 순간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같은 숨결을 나누는 그 시간에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밥 먹을 때 또 하나 나의 신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엄마가 도자기 밥그릇에 밥을 담아주어야만 비로소 식사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동급여기 따위는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기다린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밥그릇이 비어 있으면, 나는 참지 않는다. 앞 두 발을 쓱쓱, 도자기 밥그릇을 긁어댄다. 마치


“엄마, 여기가 비었어요. 채워 넣으셔야죠.”


하고 알리는 듯한 작은 시위다.

그러면 엄마는 언제나 금세 눈치채신다.


“아이고, 우리 타쿠미 또 밥 달라고 하네.”


웃으면서 사료를 그릇에 담아주실 때, 나는 비로소 꼬리를 흔들며 자리에 앉는다. 그 순간, 도자기 그릇 속에 담긴 사료는 단순한 밥이 아니라, 엄마의 손길이 담긴 특별한 만찬으로 변한다.

그 모습을 본 형아들은 늘 장난을 친다. 큰형은 내 옆에 앉아 두 손으로 허공을 긁적이며 말한다.


“엄마, 나도 밥. 여기 좀 채워 주세요.”


작은형은 더 심하다. 나처럼 바닥에 앉아 두 손을 앞발처럼 쓱쓱 긁으면서,


“타쿠미처럼 해야 엄마가 빨리 밥 주시지!”


하고 깔깔 웃는다.

엄마는 그런 형아들을 보며 고개를 저으시지만, 결국엔 모두 함께 웃음바다가 된다.

나도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합창에 동참한다. 밥그릇을 두드리는 소리, 형아들의 장난, 엄마의 웃음소리. 그 속에서 나는 늘 가장 맛있는 밥을 먹는다.


역시 우리는 식구였다.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는 건 단순히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게 아니었다.

식구(食口). 말 그대로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가족들이 수저를 들어 밥을 먹는 동안, 나도 내 앞 도자기 그릇에 코를 박고 사각사각 사료를 씹는다. 그 소리가 마치 하나의 합창처럼 어울릴 때, 나는 마음 깊이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이 집의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이 집의 한몫을 차지하는 식구라는 것을.

그래서 내게 밥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약속이었고, 서로를 인정하는 신호였다. 그리고 그 약속 안에서라면, 나는 언제까지나 참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밥을 먹는 순간, 나도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시골 농장에 있는 우리 엄마도 밥을 드셨을까?”


나는 밥그릇 앞에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곳은 새벽이 되면 이미 하루가 시작된다. 그래서 분명, 나보다 훨씬 먼저 밥을 드셨을 거다. 하지만 그 밥이 과연 따뜻했을까...

나는 입맛이 없을 때면, 내 전용으로 준비된 맛있는 캔사료에 밥을 비벼 먹는다. 엄마는 나를 낳고도 미역국 한 그릇 얻어먹지 못했을 텐데. 그 생각을 하면 내 목구멍이 자꾸만 메어진다. 불쌍한 우리 엄마.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자리에서, 홀로 견뎌야 했을 우리 엄마.

그래서일까. 내가 먹는 한 숟가락, 한 알의 사료가 때로는 죄송하게 느껴진다. 나 혼자 맛있는 걸 먹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마음이 자꾸만 걸린다.


우리 집 엄마도 밥을 잘 못 챙겨 드실 때가 많다. 형아들과 아빠 밥을 먼저 챙기느라, 정작 엄마는 부엌 한쪽에 서서 허겁지겁 드실 때가 많다. 맛있는 반찬을 한가득 차려놓고도, 엄마는 꼭 마지막에 남은 것만 드신다.

나는 그게 늘 마음에 걸린다. 엄마도 내 밥처럼, 예쁜 도자기 그릇에 정성껏 담아 대접받아야 할 사람인데 말이다. 그런데 엄마들은 다 그렇다지 않나. 자기 입에 넣는 것보다 자식들 입에 넣어 주는 걸 더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일까.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도 제발 제대로 앉아 맛있게 드셨으면 하고, 나도 앞발로 밥그릇을 긁으며 그렇게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나는 엄마도 나처럼, 누군가의 귀한 식구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시골 농장에 있는 우리 엄마도, 우리 집에 있는 엄마도 언제나 자신보다 자식들을 먼저 챙기신다. 밥 한 끼도 온전히 드시지 못하고 늘 우리만 바라보는 모습에, 나는 가끔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러다 몸이 상하시지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다. 나는 두 엄마 모두가 조금은 자신을 더 아껴 주셨으면 좋겠다. 자식들을 향한 사랑 못지않게,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엄마가 되길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특히 외할아버지께서는 맨날 나를 만나시면


"개는 개여~"


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날 귀여워하시고 아껴주신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키우셨던 슈나우져 봄이 할머니와 진돗개 설이할아버지 그리고 그 외 할아버지 손을 거쳐갔던 많은 강아지 선배님들 얘기를 자주 해주신다.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의 정체성과 방향성 삶의 기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할아버지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동생이었던 슈나우져 봄이 할머니얘기는 언제 들어도 정말 재미있다. 엄마는 봄이 할머니를 동생처럼 여겼기에 각별히 예뻐했다고 했다. 봄이 할머니가 아기 때부터 엄마와 함께 잠을 잤는데 봄이 할머니는 몽유병 환자처럼 꿈을 꿀 때마다 소리도 내고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면서 방귀도 잘 뀌었다고 했다.

그랬던 봄이 할머니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날, 엄마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오래도록 잠기셨다. 한 존재와 함께한 수많은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듯한 허전함, 그 빈자리가 너무 커서 감히 또 다른 생명을 맞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나를 데려오자는 말이 나왔을 때, 엄마의 마음속에는 설렘보다도 두려움이 앞섰다. 다시 그 같은 이별을 겪어야 한다면, 그 슬픔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싶으셨던 것이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이별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엄마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선물 같은 인연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가고 있다. 상실의 뒤안길에서 망설이던 마음들이 조심스레 열리고, 그 빈자리에는 작은 발자국과 따뜻한 숨결이 하나둘 채워진다.

나는 모른 척하려 해도 가끔 엄마 눈빛 속에 스며 있는 그리움의 그림자를 본다. 그런데 그리움은 이제 통째로 슬픔만 남기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우리 집구석구석에 웃음과 소소한 기쁨을 퍼뜨린다. 매일의 밥상, 앞발로 긁는 소리, 밤에 함께 누워 나누는 숨소리, 모두가 작지만 확실한 선물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어루만지며 살아간다. 과거의 아픔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 아픔 위에 피어난 새로운 인연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언젠가 엄마와 나도 어쩔 수 없는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오지만, 그래서 더 다짐한다. 그때 너무 깊은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오늘 하루를 더 충실히,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저녁 무렵, 창가에 앉아 바라본 노을은 딸기우유처럼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빛깔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엄마 곁에서 꼬리를 흔들며 웃음을 주리라고.

언젠가의 이별이 두렵지 않을 만큼, 오늘을 가득 사랑으로 채우리라고.


P.S 뭐니 뭐니 해도 아빠가 구워주는 소고기는 정말 맛있다. 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 고소한 냄새가 공기 속을 가득 채우면 내 꼬리는 저절로 흔들린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철학과 다짐도 잠시 내려놓고 싶어진다. 나는 그저 행복한 식구, 우리 가족의 작은 비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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