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눈물

아빠 냄새

by 주디의 작은 방

나는 태어난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 작은 몸으로 세상을 마주한 시간이 너무도 짧아,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매일같이 보던 방 안의 풍경도, 엄마 품에서 맡는 따뜻한 냄새도, 형아들이 웃으며 다가오는 얼굴도 아직은 익숙해지려면 한참 더 배워야 한다.

오늘은 유난히 낯선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 “톡, 톡, 톡.” 작은 발자국 같은 소리가 이어지고, 이내 커다란 울림처럼 집 안 가득 번져 나갔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의 정체를 찾아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 하늘에서는 동그란 물방울들이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튀어 오르며 수많은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 하얀 종이에 동그라미를 무수히 그려 넣는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내 곁으로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내 등을 쓸어 주며 말했다.


“타쿠미, 저건 비라는 거야.”


나는 엄마가 말해 준 그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고 굴려 보았다. 비. 짧지만 신비로운 울림이 입안 가득 번졌다. 투명한 유리창을 타고 또르르 굴러 내리던 방울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엄마가 손가락으로 유리창 위에 맺힌 방울들을 가리키며 속삭이듯 말했다.


“저건 빗방울이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빗방울이 내려오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맑은 구슬들이 서로 만나 합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길을 찾아 빠르게 흘러내리기도 했다. 작은 나뭇잎 위에 떨어진 빗방울은 파릇한 잎을 더 반짝이게 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빗소리는 세상을 하나의 큰 자장가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그 안에는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들이 끝없이 숨어 있다는 것을. 오늘은 그 이름 중 하나를 알게 되었다. 비. 그리고 빗방울.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내 마음속에도 빗방울이 맑게 맺혔다.


아빠는 처음에 우리 집에 내가 오는 것을 반대하셨다.

어렸을 적부터 한 번도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던 아빠는, 낯선 생명을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을 망설였다. 강아지를 좋아해 본 적도, 가까이 두고 지낸 적도 없었으니, 어쩌면 그 두려움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망설였던 이유는 단순히 낯섦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늘 말없이 가족의 삶을 책임져 왔다. 집안의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서 계셨다. 그런 아빠의 눈에 비친 ‘나’라는 존재는, 귀여운 장난감이나 잠시 데리고 놀다 잊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작은 숨결을 가진, 한 생명.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책임의 무게였다.

아빠는 잘 알고 계셨다. 나를 받아들인다는 건 단순히 집에 하얀 털뭉치 하나를 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곧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이었고, 기쁨과 함께 반드시 따르는 무거운 의무를 뜻했다. 그 의무가 때로는 기쁨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빠는 본능처럼 느끼셨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하지만 그 반대 속에는 차가움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고민과 무게 있는 책임감이 숨어 있었다.


아빠는 이 집의 가장이다. 가족을 위해 매일같이 집을 나서고, 유일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그 어깨에 얹힌 무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무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아빠의 등을 굽히게 만들고, 목소리를 낮추게 만들었다. 마치 눈 덮인 산이 고요하게 버티고 서 있듯, 아빠는 말없이 그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무게가 얼마나 크고 단단한 것인지. 나는 그저 아빠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그 그림자 곁에 기대어 앉고 싶을 뿐이었다.


아빠의 눈에 비친 나는, 그저 귀여움으로만 다가올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매일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책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한 생명. 그것은 기쁨이자 동시에 의무였다. 아빠는 그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에 쉽게 허락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내가 우리 집에 들어온 첫날, 그 무게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집에 온 첫날이었다. 엄마는 형아들을 데리고 학원에 가야 해서 집은 잠시 고요했다. 낯설고 넓은 거실, 텅 빈 공간에 남은 사람은 아빠와 나뿐이었다.

아빠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두 손으로 안아 올리셨다. 낯선 체온, 낮게 울리는 심장 소리, 그리고 두툼한 손길. 그 품은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이내 따뜻했다.

그러더니 아빠는 나를 살며시 자기 배 위에 올려놓으셨다. 내 털만큼이나 폭신폭신한 아빠의 배 위에서 나는 까르르 웃듯 몸을 굴리고, 작은 발로 이리저리 톡톡 건드리며 놀았다. 아빠는 피식, 하고 웃으셨다. 어쩌면 그 웃음은 아빠 스스로도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번에 알았다. 그 웃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아빠 배 위에서 뛰놀던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언덕을 만난 듯했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와 형들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아빠가 마룻바닥에 드러누워 나랑 신나게 굴러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현관문 앞에 선 세 사람의 표정은 꼭 만화 속 주인공처럼 얼어붙었다. 입은 턱까지 벌어지고, 눈은 동그랗게 커지고, 발걸음은 딱 멈춘 채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 우리 아빠 맞아?"


형들의 얼굴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고, 엄마는 두 눈을 깜빡이며 나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날의 그 표정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웃음이 터진다.

그날 이후 나는 확신했다. 아빠가 강아지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좋아할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유일하게 우리 집에서 내가 오는 것을 반대했던 아빠는 이제 유일무이하게 나를 사랑해 주신다.

지금은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든든한 내편이 되어 주셨다. 그 변화는 기적처럼 빠르게,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아빠의 커다란 키와 넓은 어깨가 내 몸을 감싸 안을 때면, 나는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그 품 안은 바람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성벽 같았고, 동시에 포근한 이불 같았다. 작은 나를 지켜 주는 단단한 울타리이다.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간식도 누구보다 먼저 챙겨 주신다. 작은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두었다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살짝 내밀어 주시곤 한다. 나는 그 간식을 물고 폴짝폴짝 뛰며, 아빠의 손길에 꼬리를 흔들어 감사를 전했다. 아빠의 눈가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주름이 스며 있었고, 그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처럼 나를 감쌌다.

아빠는 내게 슈퍼맨 같은 존재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닥쳐와도, 그 팔 안에 있는 한 나는 절대 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아빠와 함께 있으면 이 세상 두려울 것이 없다.


나에겐 언제나 포근하고 드넓은 바다 같은 아빠.


그런데 요즘 아빠가 달라졌다. 전처럼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지 않으신다. 퇴근 후 무겁게 늘어진 어깨로 돌아오시는 아빠의 모습은 예전의 당당함과는 달라 보였다. 어느 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일이… 참 쉽지가 않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빠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늘 모든 걸 척척 해내실 줄만 알았는데, 축 처진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 건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엄마와 아빠의 나이가 점점 갱년기에 가까워질수록 두 분의 건강과 마음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엄마가 알려주셨던 창밖의 유리를 타고 내리던 ‘비’와 ‘빗방울’처럼 아빠의 눈에서 물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륵 흘러내렸다.

이내 작았던 물방울은 거센 빗물처럼 양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비’가 아닌 아빠의 ‘눈물’이라는 것이었다.

그 눈물은 조용히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오랫동안 억눌러 두었던 무언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듯 격렬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도 숨죽여 삼킬 수 없는 울음이었다. 나는 그 곁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작은 몸으로 아빠 무릎에 얼굴을 비비며 이렇게 속삭였다.


“괜찮아, 아빠. 나 여기 있어.”


차라리 아빠가 더 오래 울었으면 싶었다. 그동안 쌓여온 많은 일들과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눈물로라도 흘러나온다면, 그것이 아빠를 조금은 가볍게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 울음이 아빠와 세상의 대화 같았다.

한참을 울던 아빠는 가까스로 눈물을 거두고는 나를 바라보며 웃어 주셨다. 눈가에는 아직 젖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미소는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올가을에는 네가 태어났던 시골로 같이 여행 가자. 거기 가면… 마음이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눈물에 젖은 아빠의 얼굴, 고즈넉한 아빠의 냄새, 무겁게 처진 어깨를 보며 다짐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아빠 곁을 지키는 아빠의 작은 아기 비숑이 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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