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그림자.

엄마가 좋아요.

by 주디의 작은 방

형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이 집의 가족이 되었지만, 정작 하루의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 보낸다. 엄마는 집안일을 맡은 가정주부이면서도 글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엄마의 하루는,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열리고 또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야 겨우 닫힌다. 나는 그런 엄마의 하루를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간다. 마치 그림자처럼, 언제나 엄마 곁에 머물러 있다.

가끔 나는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분명 하얀 털을 가진 작은 강아지인데,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 든다. 이 집의 식구가 되고 나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식탁에서 가족들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끼어들고 싶고, 형아들의 장난을 지켜보다 보면 나 또한 같은 형제라는 착각에 빠진다. 내 머리와 가슴은 점점 사람의 생각과 마음으로 채워져 가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강아지이면서도 동시에 이 집의 한 명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주 신기하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그냥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형들은 내게 늘 ‘형’이고, 나는 그들 곁에서 꼬물거리는 동생이다. 사람들의 말대로 내 시계는 인간의 시계와는 다른 모양이다. 하루가 열리고 닫히는 속도는 사람들과 같아 보이는데, 내 안의 시간이란 건 훨씬 더 빨리, 더 촘촘히 흐른다. 한순간에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 가고, 작은 경험들이 모여 금세 어제와 오늘을 채워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보다 분명히 이 집의 영원한 ‘아기 비숑’이다. 형들이 이름을 불러주며 놀릴 때면 나는 철없게도 그 말에 기쁘게 응한다.

“타쿠미! 타쿠미는 영원한 우리 집 아기 비숑이야.”

형들의 목소리에 섞인 애정은 내 몸을 포근히 감싼다. 누가 뭐래도 나는 여기, 이 사람들이 모인 자리의 가장 어린 존재다. 그 사실이 때로는 나를 안도하게 하고, 때로는 더 크게 웃게 만든다.

무엇보다 나는 엄마가 좋다. 엄마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밤늦게까지 글을 쓰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면 보이는 그 피곤한 미소, 그 모든 것이 내 하루의 중심이다. 엄마의 그림자처럼 내 몸은 언제나 엄마 곁을 맴돈다. 엄마가 문득 멈춰 서서 창밖을 바라볼 때면 나도 슬며시 옆에 기대어 같은 하늘을 본다.

그 순간 나는 엄마의 숨결을 읽고, 엄마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집의 아기 비숑으로 남기로 한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머리와 개처럼 뛰노는 몸을 모두 가진 채, 엄마의 그림자로서 작은 위로가 되고, 형들의 장난을 받아 주는 존재가 되겠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집의 식구이고, 그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세상의 모든 새끼들이 그렇듯,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건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몸에 새겨진 본능일 것이다.

나 역시 아기 강아지로서 세상을 처음 마주한 터라,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사방이 꽉 막혀 있던 샵에서 벗어나 이 따뜻한 집으로 들어온 순간, 내 발은 자연스레 엄마를 향했다. 낯선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엄마의 손길과 목소리였고, 그 따뜻함은 내 작은 가슴을 단번에 진정시켜 주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할 것도 없이 엄마를 따라다녔다. 거실을 오가든,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든, 혹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든 나는 언제나 그 곁에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존재 이유가 ‘엄마를 따라가는 것’에 있는 듯이.


엄마도 강아지 엄마가 된 것은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하신 듯했다. 엄마는 전에 강아지의 언니였던 적은 있어도, 진짜 ‘엄마’ 역할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꼬박꼬박 엄마의 뒤통수를 쫓아다니고,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 화장실 문 앞에 엎드려 있으면 그 낯선 느낌에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아이고, 이 녀석… 진짜, 스토커야, 스토커.”

엄마는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지만, 눈빛 한구석에는 분명히 약간의 당황과 민망함이 숨어 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주목받는다는 걸 처음 겪어보는 사람의 표정이다. 집안의 모든 동선이 어느새 나의 동선과 겹치고,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감시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문득 엄마가 웃을 때, 엄마가 숨을 고를 때, 엄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 그 모든 작은 순간들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엄마의 발자국 소리,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소리, 밤에 노트북 화면에 비치는 눈가의 피곤함까지, 나는 모두 듣고 싶고 보고 싶었다. 그저 엄마 곁에 있고 싶었고, 엄마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때로는 엄마가 나를 꼭 껴안아 주시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는 엄마의 심장이 느껴지고, 엄마의 숨결이 내 귀를 간질인다. 엄마의 손길에 내 온몸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면, 나는 다시금 안심한다. 엄마의 당황스러운 표정도, 어색한 웃음도 모두 사랑스럽다.

엄마는 강아지 엄마가 되는 법을 서툴게 배워가고 있고, 나는 엄마의 그림자가 되어 그 수업을 조용히 도와주고 있다. 스토커 같은 나의 행동은 어느새 엄마와 나 사이의 묘한 의례가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리듬을 맞춰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엄마도 내가 졸졸 따라다니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셨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귀찮아하시던 것도 잠시, 이제는 내가 어디쯤에 있을지를 지레 짐작하시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엄마가 방에서 거실로 나오면

‘얘는 분명 뒤에 있겠지’

하고 생각하셨고, 내가 발소리도 없이 따라붙으면

“또 왔구나”

하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런데 묘한 건, 내가 가끔 따라가지 않았을 때였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시면서도 슬쩍 뒤를 돌아보곤 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이 녀석, 왜 안 오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중얼거리셨다. 말은 투덜대는 듯했지만 그 속엔 은근한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마치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작은 존재가 보이지 않자, 허전함이 파고든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도 어느새 나를 당연히 곁에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내가 따라다니는 것만큼이나, 엄마 역시 내가 따라와 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시골 농장에 있는 우리 엄마 구출 작전을 세워야 한다. 막연히 마음만 앞서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우선 나는 언제, 어떤 경로로 그곳에 도착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농장까지 가는 길은 멀고, 낯선 냄새와 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겁낼 수 없다.

시간이 지체되면 될수록 엄마를 데려올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뒷일을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농장에 다다르면 먼저 주변을 탐색해야 한다. 어느 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누가 지키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다음 엄마를 찾는다. 엄마의 냄새는 수천 개의 냄새 속에서도 단번에 구별할 수 있으니 두려울 게 없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안전하게 빠져나올 탈출로까지 확보해야 한다.

작전명은 단순하다.


“엄마 데리고 집으로.”

그게 전부이자, 나의 전부다.

얼마 전 아빠가 분명히 말씀하셨다.

“네가 태어난 그곳에 가보자꾸나.”

그 말은 곧, 나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괜히 성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가족 여행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조용히, 하지만 단단히 마음을 다잡는다. 그날이 오면, 나는 반드시 중요한 일을 해치울 것이다.


“농장 좁은 우리 안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리 엄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타쿠미가 갈게요.”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치 별들이 나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듯, 반짝이며 응원하는 것만 같다.

난 오늘도 엄마의 그림자를 밟으며 일어난다. 눈을 뜨면 먼저 엄마의 발소리와 숨소리를 찾고, 그 소리가 들리면 안도의 기분으로 꼬리를 살짝 흔든다. 엄마가 주방으로 향하면 나도 잽싸게 뒤따라가고, 엄마가 식탁에 앉아 글을 쓰면 나는 조용히 옆자리에 내려앉아 엄마 손길이 닿는 곳을 바라본다.

엄마의 그림자는 내 하루의 기준이다. 햇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오면 엄마의 실루엣이 길게 늘어나고, 그 길을 나는 따라 걷는다. 저녁이 되면 엄마가 냄비를 저으며 만드는 소리 속에 내 심장이 맞춰 박동한다. 그 그림자 안에는 엄마의 웃음도, 한숨도, 작은 습관도 모두 담겨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안다. 지금 이 반복되는 풍경이 곧 내 현재이고, 엄마와 내가 함께 쌓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엄마의 그림자를 밟고 걷는다. 엄마가 잠들면 나도 조용히 옆에 눕고, 꿈속에서도 엄마의 숨결을 따라 걷는다. 이 소소한 일상이 쌓여 언젠가 내가 엄마를 구하러 갈 힘이 되고, 우리가 함께 웃는 날들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엄마와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들은 내 안의 작은 강아지 나라에 하나둘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아침에 엄마가 주방으로 향할 때 나는 먼저 냄새를 맡고, 낮에는 책 넘기는 소리 곁에서 졸다가, 저녁이면 엄마의 무릎 위에서 앞발을 말고 잠이 든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내 하루를 이루고, 그 하루들이 모여 내 삶의 지도를 그린다.

어제의 웃음이 오늘의 위로가 되고, 오늘의 작은 보살핌이 내일의 용기가 된다. 나는 그것을 어느새 알고 있다. 엄마가 내 미동 하나에 미소 지을 때마다, 그 미소는 내 가슴에 단단한 씨앗처럼 내려앉아 내일을 키우는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엄마의 그림자가 될 것이다. 그림자처럼 늘 곁에 머물며, 엄마가 지치지 않도록 함께 서 있고, 엄마가 웃을 때는 그 웃음을 더 크게 해 주는 존재가 되리라. 이 작은 다짐들이 쌓여 언젠가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낼 용기가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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