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야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공항의 공기는 묘하게 달콤했다. 사람들의 발걸음, 휙휙 스치는 바퀴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방송음까지 모든 게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나는 ‘타쿠미’라고 적힌 작은 보딩패스를 꼬옥 쥐고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수화물 무게를 잴 차례가 되자,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타쿠미도 무게 재볼까?”
나는 몸을 조심스레 올렸다. 숫자가 천천히 움직이다가 5.4kg에서 멈췄다. 가족들은
“오늘은 컨디션 좋네!”
하며 웃었다. 나도 그 말에 따라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정말로, 잘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구름이 가까워졌다. 하얗고 부드러운 구름 사이를 헤집으며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푸른 색깔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짙고, 깊었다.
엄마는 예전에 말했었다.
“제주도의 바다는 어느 바다보다 훨씬 파래. 그리고 더 느리게 움직여. 마치 숨을 쉬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았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 푸른 결이 정말로 숨을 쉬는 듯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에 물결이 일었다 사라지고, 햇빛이 내려앉는 자리마다 반짝임이 새겨졌다.
나는 제주도로 떠나기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가 말하던 그 바다를 실제로 보게 될 거란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내일, 그 바다 앞에 서면…
나는 어떤 마음이 될까.
혹시,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질까.
기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곧 제주공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들리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묘하게 설레었다. 나는 창가 쪽 자리에 몸을 기댄 채, 작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상이 발아래로 점점 작아지고, 구름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내 머리털처럼 뭉개뭉개한 구름 사이로 빛이 쏟아졌다.
햇살이 비행기 날개 위를 스치며 반짝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숨을 죽였다.
달과 별이 보이는 저녁 하늘은 이미 익숙했다.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밝은 낮의 하늘 속, 눈부신 햇살 한가운데를 뚫고 올라와 본 건 처음이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하늘이 얼마나 깊은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말하던 ‘푸른 바다’가 저 아래 어딘가에 있다면, 이 하늘 끝 어딘가에도 엄마의 마음이 있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엔진 소리와 햇살, 그리고 구름 냄새 속에서 마음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비행기가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파란빛이 번져 들어오더니, 이윽고 창밖으로 거대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왔다. 엄마가 말하던 바로 그 바다였다.
햇살을 머금은 물결이 반짝이며 움직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은 마치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가족들이 저마다 창밖을 가리키며 웃었다.
“타쿠미, 저기 봐. 저게 제주 바다야.”
나는 고개를 껌뻑이며 그 말이 주는 울림을 오래 씹었다.
바람 냄새가 기내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자, 타이어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이제 정말 도착했다. 나는 몸을 바짝 세워 창문을 다시 바라봤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 그저 묵묵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얼굴로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따뜻하게 일렁였다.
공항을 나서자, 따뜻한 바람이 먼저 반겨주었다. 바람 속엔 소금기 섞인 냄새가 스며 있었고, 멀리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우리는 렌터카를 타고 바다 쪽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하나같이 새로웠다. 돌담 너머로 노란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푸른 하늘 아래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흘렀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점점 가까워졌다.
도착한 숙소는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펜션이었다. 문을 열자 짭조름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거실 창문 너머로 바다가 한가득 들어와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바다야…”
그 한마디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형아들은 짐을 풀자마자 해변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 모래사장으로 달려갔다. 햇살은 부드럽게 빛나고, 바다는 은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파도가 발끝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간질간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은 형아는 조개껍질을 주웠고, 큰 형아는 모래 위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그 원 한가운데에 ‘T’라고 적었다.
“이건 타쿠미 자리야.”
나는 그 자리를 빙빙 돌며 뛰었다. 마치 그 순간, 바다도 나를 따라 웃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바다는 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모래 위에 앉아 그 빛을 오래 바라봤다. 햇살이 물결 위를 천천히 스쳐 지나가며, 하루의 끝을 노래하듯 잔잔히 흔들렸다. 그 속에서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타쿠미, 바다는 늘 여기 있단다. 힘들 때마다 와서 마음을 씻어도 좋아.’
그 말이 바람에 섞여 귀 끝을 스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갔다.
바람은 따뜻했고, 파도는 잔잔하게 해변을 쓰다듬고 있었다.
형아들은 모래로 산을 쌓고, 아빠는 모래 위에 “타쿠미”라고 내 이름을 썼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나는 잠시 그 곁을 떠나, 바다가 가장 가까운 곳까지 걸어갔다.
모래가 젖어 있었고, 내 발자국마다 작은 물결이 스며들었다.
그때, 물 위에 비친 나를 보았다. 살짝 흔들리는 내 얼굴은 파도결에 따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나는 그 거울 같은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파도가 조금 세게 밀려와 내 얼굴을 휘감았다. 물결 사이에서 낯익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건 엄마였다.
“엄마…?”
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대답 대신 파도가 내 발끝을 감싸고, 부드럽게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분명히 들은 것 같았다.
‘타쿠미야, 잘 지내고 있니?’
그 목소리는 바다 밑에서 솟구치는 물방울처럼 맑았다.
나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응, 나 잘 지내. 형아들이랑, 엄마 아빠랑 다 같이.”
그리고 속으로 덧붙였다.
“엄마, 나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걸.”
그때 또 한 번의 파도가 와서 내 얼굴을 지워버렸다. 엄마의 모습도, 내 눈빛도 모두 사라졌다. 남은 건 반짝이는 햇살과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수평 선 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바다가 나에게 말해주는 듯했다.
“괜찮아, 타쿠미. 다시 만날 날이 올 거야.”
노을이 깔리자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형아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가족에게로 뛰어갔다.
오늘의 바다는 내게 엄마의 품처럼 따뜻했다.
골목은 바람 한 줄기에도 귤 향이 묻어났다. 나는 하네스를 찬 채 엄마 옆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돌담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스르르 미끄러져 나왔다.
제주도 토박이 고양이였다. 털빛은 돌담처럼 회색빛이었고, 눈은 낮게 깔린 햇살을 품은 금빛이었다. 녀석은 내 앞을 막아섰다.
낯선 냄새, 낯선 발자국, 낯선 존재. 녀석의 꼬리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멈춰 섰다. 그저 반갑게 인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안녕, 나는 타쿠미야.”
그 마음이 전해졌을까.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물러났다.
마치 ‘여긴 내 구역이야’ 하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게 인사의 표시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한 번 스치고, 풀잎이 흔들렸다. 그 틈에 녀석의 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짧은 대치. 그러다 고양이가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장 위로 올라가, 다시 자신의 세상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털 사이를 스쳐지나갔고, 귤 향기가 묘하게 쓰게 느껴졌다.
‘나는 그냥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골목 어딘가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아마도 고양이도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제주도의 오래된 돌담처럼, 그 눈빛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저녁이 되자 시장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골목마다 노릇노릇한 전 부치는 소리가 났고, 갓 잡아 올린 해산물들이 얼음 위에 반짝였다. 그 사이를 걸을 때마다 바다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엄마는 회 한 접시를 포장하며 말했다.
“이건 타쿠미 것도 있어요.”
그 말에 아빠와 형아들이 동시에 웃었다. 나는 꼬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시장 안은 사람들의 웃음과 음악, 구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듯 내 털끝을 지나갔고, 나는 괜히 마음이 들떴다. 이게 여행의 냄새일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이미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멀리 바다가 보였다. 낮에는 찬란히 빛나던 그 푸른 바다가, 밤에는 고요한 거울처럼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가족들은 회와 전, 고등어 구이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방 안에는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아빠가 젓가락으로 회를 들어 엄마에게 건넸고, 형아는 손으로 귤을 까며 내 앞에 조그만 조각을 놓아주었다. 나는 살짝 입을 벌려 그 귤 조각을 받아먹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철창 너머에서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 그때도 바람이 이렇게 불었었다.
“바다는… 세상에서 제일 큰 거울이야. 네 마음이 비칠 만큼 맑게 봐야 해.”
나는 창가로 다가가 바깥의 어둠을 바라봤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별빛이 수면 위로 흩어졌다.
“엄마, 나 지금 그 거울 보고 있어.”
입 모양만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날 밤, 나는 일기장에 짧게 적었다.
‘바다는 내 마음을 닮았다. 낮엔 반짝이고, 밤엔 조용히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