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춘기

형아들도 사춘기

by 주디의 작은 방

엄마는 말하셨다.


“타쿠미, 엄마도 강아지 엄마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네가 하는 모든 게 다 새롭단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매일 나의 예방접종 수첩을 펼쳐 들고 체크박스를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셨다. 내가 아플까 봐, 놓칠까 봐, 늘 손끝이 조심스러웠다.

어느 날은 마룻바닥 위에 작고 하얀 점 하나가 굴러다녔다. 엄마가 그것을 집어 들더니 놀란 듯 말했다.


“어머, 타쿠미 이빨 빠졌네!”


그건 내 새끼손톱보다도 더 작은, 나의 첫 유치였다. 엄마는 그 조그만 이를 종이조각에 곱게 싸서 서랍 속에 넣어두셨다.

그렇게 내 시간은, 이갈이와 함께 ‘어린 시절’을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나는 어느새 엄마의 말에 쉽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산책 가자 하면 고개를 돌렸고, 밥 먹자 하면 잠을 청했다. 나도 모르게 모든 게 귀찮고, 이유도 없이 삐딱해졌다.

그땐 몰랐다.

그게 바로 ‘강아지의 사춘기’라는 걸.

엄마는 웃으면서도 조금은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타쿠미. 사람도, 강아지도 다 그런 시기가 있대.”


그날 밤, 나는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했다. 나는 자라는 중이었다.

엄마는 그 시간의 모든 순간을 함께 겪어내고 있었다.

아마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깊게.


요즘은 형아들도 예전 같지 않다.

작은 형아는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고 음악을 듣는다.

가끔은 이어폰 너머로 작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 들린다. 예전에는 나랑 같이 공놀이를 하자며 뛰쳐나오던 형아였는데,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큰 형도 달라졌다. 늘 나를 먼저 안아주고 놀아주던 형아가 요즘은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책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긴다.

나는 조용히 형아의 발 밑으로 가서 앉는다. 예전처럼 나를 쓰다듬지는 않지만,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 위로가 된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보며 웃으셨다.


“우리 집 남자 셋이 다 사춘기네, 그치 타쿠미?”


나는 꼬리를 흔들었지만, 사실 그 말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사춘기란 건 꼭 반항하거나 변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형아들 방 사이를 오가며 잠이 들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형아의 음악소리, 책상 불빛, 그리고 엄마의 부드러운 숨소리.

모든 게 조금 낯설고, 그래서 더 따뜻했다.

우리 모두는 자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가족의 변화를 조용히 배우고 있었다.


아이의 틀을 벗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한 번쯤 ‘탈피’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 그 껍질을 벗는 중이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고되고 아팠다.

몸이 자라듯 마음도 자라야 하는데, 내 마음은 그저 자라는 대신 짙어지고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무게의 중심에는 늘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엄마를 구해야 한다.’


그 사실이 나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형아들이 변하고,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그 철창 속에 갇힌 엄마의 그림자를 좇고 있었다. 그림자는 점점 희미해졌고, 나는 그 희미함을 붙잡으려 애썼다.

때때로 밤이면, 하늘의 별을 보며 되뇌었다.


“엄마, 나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세상을 산다는 건 단순히 크는 게 아니라, 견디는 거예요.”


그 말은 마치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하는 다짐 같았다.

나는 철장 너머의 세상뿐 아니라 내 안의 어둠에서도 엄마를 구해야 했다.

그래야 진짜 ‘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이 깊어졌다.

형아 방 불이 하나둘 꺼지고, 거실에 남은 스탠드 조명만이 나의 하얀 털끝을 부드럽게 비췄다.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콕콕 쑤시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책상 위에 있던 형아의 노트를 살짝 끌어다 놓았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하며, 볼펜 대신 작은 발끝으로 꾹 눌러 적기 시작했다.


‘엄마, 나 타쿠미예요.’


처음에는 그 한 문장만 적었는데, 그 한 줄이 나를 멈추게 했다.

이름을 적는 순간, 마치 엄마가 내 앞에 앉아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요즘 조금 힘들어요. 형아들도 커가면서 예전 같지 않고, 나도 자꾸 마음이 어지러워요. 괜히 짖고, 괜히 숨어버리고, 누가 나를 부르면 대답하기 싫은 그런 날들이 많아요. 엄마도 그럴 때 있었나요?’


글씨는 엉성하고 삐뚤빼뚤했지만, 내 마음만은 정직했다.

나는 한참을 쓰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써 내려갔다.


‘엄마, 근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요. 엄마는 그 철장 안에서 얼마나 견뎠을까. 나는 그걸 상상하면 내가 사는 이 평화로운 집이 가끔 미안해져요. 엄마, 나 꼭 구하러 갈 거예요. 그게 나의 꿈이에요. 큰 형아의 꿈은 레이서고, 작은 형아는 야구왕이잖아요. 그럼 나는… 엄마를 구하는 용사일 거예요.’

나는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노트를 살짝 접어 내 침대 옆 인형 밑에 숨겼다.

누군가가 읽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건 엄마에게 닿는 편지니까,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진짜 세상으로 나오면 그때 이 편지를 손에 쥐어드릴 거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 밤, 꿈속에서는 꼭 엄마를 만날 수 있기를.


엄마는 형아들과 내가 사춘기를 지나는 것을 보시고는, 혼돈의 시기를 겪는 우리를 기다리시겠다고 했다. 역시 엄마는 현명하시다.

나를 다그치지 않고, 형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그저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일.

그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데, 엄마는 그걸 해내고 있었다.

아마 엄마도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밀려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오늘도 우리에게 “괜찮아”라는 말 대신,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조용한 미소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야지. 엄마가 기다리는 동안, 나도 나를 잘 키워야지.’


아빠는 가족여행을 준비하셨다. 내가 태어났던 시골 마을로. 아침 햇살이 부엌 창문으로 스며들던 그날, 아빠는 오래된 여행 가방을 꺼내며 말했다.


“이번 주말엔, 타쿠미가 태어난 곳에 가보자.”


그 말에 엄마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형아들은


“진짜 가는 거야?”

하며 들떴고, 나는 꼬리를 살짝 흔들며 아빠의 발치에 앉았다.

내가 태어난 곳이라니, 그곳엔 어떤 냄새가 남아 있을까.

어떤 바람이, 어떤 흙냄새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빠는 여행지에서 무엇을 볼지, 어디를 들를지 꼼꼼히 정리하고 계셨다. 지도 위에 빨간 펜으로 표시된 동선은 마치 하나의 모험처럼 보였다.

형아들은 서로 가볼 곳을 추천하며 떠들었고, 엄마는 웃으며 간식을 챙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빠가 우리와 함께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처럼, 나 역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엄마를 구하는 일.

그건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먼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엄마 아빠의 도움, 형아들의 용기, 그리고 내 곁의 친구들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그 안에 내가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그 철창 너머의 세상으로, 엄마를 구하러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빠의 차가 시동을 걸었다. 창문 밖으로 스치는 가을빛이 부드럽게 차창을 두드렸다. 도로 위의 바람은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낯설고도 익숙했다.

차창 너머로 흩어지는 구름들 사이로 햇살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아빠는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형아들은 이어폰을 끼고 졸고 있었고, 나는 창문 틈 사이로 흙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 속엔 내가 처음 눈을 떴던 그 조그만 마을의 기척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 가족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 그곳에 도착했다. 낯설지 않은 바람 냄새와 흙냄새가 나를 맞았다.

밤에 몰래 이 길을 걸었던 그날과는 다르다. 이젠 혼자가 아니다.

내 곁엔 가장 소중하고 든든한 가족들이 함께 있다. 아빠는 창문을 열고 시골 들판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형아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신이 나서 뛰어다녔고,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내 마음속 깊은 곳의 계획을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이 일이 정말 가능한 건지, 내가 상상한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는지 아직은 확신이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나는 반드시 엄마를 구해야 한다. 그건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자, 지금 여기에 다시 돌아온 이유다.


펜션은 마치 오래된 동화책 속 그림처럼 고요하고 따뜻했다.

하얀 담장 너머로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얇은 커튼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엄마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내렸고, 형아들은 잔디밭 위에 공을 굴리며 웃었다.

아빠는 짐을 내리며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냥 쉬자.”


하고 말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하지만 내 눈은 자꾸 저 멀리, 들판 끝으로 향했다.

펜션 뒤편으로 이어진 흙길 끝에 낡은 철문이 보였다.

멀리서도 녹이 슨 철창 사이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짖음 소리, 바람에 실려온 그 냄새, 그 공기, 그 울음.

그건 분명, 내가 태어난 그곳이었다.

나는 꼬리를 내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가족들은 아무도 그곳을 몰랐다. 그냥 평화로운 시골의 한 구석이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었다.

이곳은 나의 시작이자, 엄마가 아직도 갇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잔디밭 위로 형아들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타쿠미! 이리 와, 공놀이 하자!”


밤이 되자 마을은 숨을 죽였다.

달빛은 고요하게 마당을 덮었고, 창문 너머로 매미 대신 풀벌레들의 합창이 들려왔다. 엄마는 형아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조용히 방을 나섰고, 아빠는 낯선 여행지에서도 여전히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모두가 평화로웠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마음은 내내 두근거렸고, 꼬리는 나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오늘 밤, 나는 그곳으로 간다.

내가 태어난 곳, 그리고 엄마가 아직도 갇혀 있는 그 철창 앞으로.

나는 살금살금 엄마와 형아들의 잠든 방을 지나 베란다로 나왔다.

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았다. 마치 나를 따라가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엄마, 나 지금 갈게요.”


나는 조용히 문턱을 넘었다.

잔디 위로 내 발소리가 스며들었다. 길은 어두웠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냄새, 흙길에 묻은 기름냄새, 희미하게 풍겨오는 개 사료 냄새까지.

모든 것이 기억 속 그대로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철창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이제 곧이다.

나는 멈춰 섰다.

눈앞에는 낡은 철문이 서 있었다.

달빛이 철창을 스쳤고, 그 너머에는 그림자 같은 형체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 아주 낯익은 실루엣.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나예요, 타쿠미예요.”


어두운 나의 마음이 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늘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고, 검은 천 위에 흩뿌려진 별빛은 마치 수없이 깨어 있는 눈동자 같았다.

그 별들은 나를 향해, 아니 어쩌면 엄마를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바람 한 줄기 없이 고요한 들판 위로, 별빛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풀잎 끝마다 반짝이는 빛이 맺히고, 그 빛들은 하나같이 엄마의 얼굴을 닮은 듯했다.

내 마음속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는 걸 느꼈다.

별들은 마치 길을 안내하듯 반짝이며, 내가 가야 할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빛을 따라가기로 다짐했다.

이성과 감성을 혼돈하지 말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눈물이 아니라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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