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수력 20년

끈기와 꾸준함이라는 오해에 대하여

by 유영


수영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수영을 얼마나 하셨어요?"

수영 강습을 처음 등록한 게 2007년이니까, 연도를 헤아려보다 계산하기조차 귀찮아져 그냥 "20년 정도요"라고 얼버무린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하셨어요?” 또는 “왜 그렇게 계속하세요?” 뭔가 거창한 비결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미안하게도 내 대답은 늘 같다. "그만둘 이유가, 그만둘 용기도 없어서요."


수영의 시작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무기력을 극복하거나 건강을 되찾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첫 취업을 하여 들떠 있던 때, 서울이라는 도시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어디선가 본 뉴요커처럼 새벽에 운동 하나쯤은 해주고 출근해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다.

때마침 엄마가 매일 새벽에 수영을 다니고 있었기에, 다른 고민 없이 엄마가 태워주는 차에 편하게 몸을 실었다. 엄마 친구분들의 "엄마랑 같이 수영하니 효녀네", "딸이 있어 같이 운동하니 부럽다"라는 말에 엄마의 어깨가 잠시나마 으쓱해지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언젠가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새벽녘 몰래 귀가하다가 현관문에서 딱 마주친 아빠가, "지금 들어오는 거냐"며 불호령이 떨어지려던 찰나, 엄마가 "얘, 지금 자다가 나랑 수영 가는 거야"라며 나를 황급히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려간 수영장에서 숙취로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탈의실에 누워있다가,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 주섬주섬 수영복을 갈아입고 락스 냄새 가득한 수영장 물로 해장하며 헤엄쳤던 그 새벽은, 엄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의 영법이었다. 수영장은 딸 셋 중 장녀인 내가 엄마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이후로도 엄마가 있어서, 친구가 있어서, 그리고 물이 있어서.

시기에 따라 변하긴 했지만 그저 그런 소소한 이유로 아침에 눈을 뜨면 수영장에 갔고,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달에도 갔다. 그러다 보니 1년이 지났고, 5년이 지나,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아침 수영을 20년간 해왔다고 하면 지독한 끈기가 있다거나, 꾸준함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실과 다르다고, 오해라고 말하고 싶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버티고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수영장에 가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나와 함께 수영을 하던 사람들 중 더 이상 수영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엄마는 수영장의 물이 피부 문제를 야기해서 그만두었고, 남편은 수영에 재능이 없는데 계속하는 건 시간 낭비라며 다른 운동을 하고 싶다고 떠났으며, 친구는 삶이 바빠져서 수영장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 나도 수영을 그만둘 명분이 있었다면 진작 그만두었을 것이다. 피부도 괜찮고, 다른 잘하는 운동도 없고, 선천적으로 잠이 없어 바빠도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았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조차 만삭까지 수영해도 좋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있으니 멈출 핑계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했을 뿐이다.


살다보면 순간의 우연으로 시작한 일이 익숙함으로 다가오고, 삶에 스며들어 별다른 불편함 없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결단력보다, 익숙한 것을 그만둘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도 사람도 그렇다. 경험 삼아 시작해 본 일이었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이어져 평생직업이 되기도 한다. 대학 시절 만나 같이 있으면 편해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친구는 어느새 남편이 되어 삶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반대로 무언가를 지속하는 데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면, 그건 내 끈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 단지 나와 맞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이 되면 나는 아마 또 수영장에 갈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그만둘 이유를 찾지 못했고, 익숙한 이 수영장의 물결을 거스르고 나갈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