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 속에 숨어있는 권태에 대하여
아침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다. 이번 달부터는 매일 7시 수영강습에 절대 결석이나 지각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했는데, 첫날부터 여지없이 늦잠이다. 지금이라도 바로 집을 나서 30분이라도 수영을 할 수 있지만, 오늘은 그보다 딸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등교를 배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오늘은 왜 수영 안 가요?"
"네 밥 챙겨주고, 머리도 해주려고......"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나는 안다. 그저 수영강습을 빠지기 위한 핑계라는 걸.
수영을 하다 보면 속칭 '수태기'라고 불리는 시기가 찾아온다. 수태기는 수영과 권태기의 합성어로, 열정 대신 싫증이 자리 잡고, 수영장에 가기가 귀찮아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시기를 말한다. 한때는 아침수영이 설레 잠을 설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늦잠을 자거나 다른 약속을 만들어 빠질 핑계를 모색하게 된다.
이 시기가 오면 늘지 않는 수영 실력이 원망스럽고, 이렇게 열심히 해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속도가 느린 자유형, 다리가 가라앉는 배영, 타이밍조차 맞지 않는 평영, 총체적 난국인 접영. 멀리 뛰지 못하는 스타트, 돌기만 하면 속도가 느려지는 턴까지. 수영 동영상을 찾아보고, 수영에 관한 책도 읽어보며, 열심히 강습도 들었건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더욱이 나이가 들며 신체적 기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는데 갓 시작한 20대 젊은 친구들 실력이 쑥쑥 늘 때 야속하기도 하다. 게다가 코로나에 걸린 이후 줄어든 폐활량 때문인지 예전처럼 지구력도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상급반 승급, 새로운 영법 익히기, 대회 도전하기 등 수영에서 얻는 성취감이 가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어 있거나 퇴보된다는 느낌만 남는다.
또한, 이상하게도 이때는 수영장의 인간 관계에도 싫증이 난다. 과하게 뺑뺑이를 시킨다거나 선수급으로 자세를 교정하려는 강사선생님의 수업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수영자세를 잘 봐주시던 같은 레인 회원님의 충고도 잘난척 같아서 듣기 싫어지고, 수영 끝나고 나누던 시시콜콜한 수다도 무미건조해진다. 평소에는 무심코 넘어가던 사소한 비매너 행동들-샤워를 하지 않고 입수하는 사람, 레인 끝을 막고 서 있는 사람, 내 발을 계속 툭툭치는 뒷사람-이 하나같이 거슬리면서 짜증이 난다.
이러한 마음으로 억지로 수영을 하다보면 몸이 귀신같이 알아챈다. 어깨가 아프고, 허리는 쑤시고, 무릎도 시큰거린다. 병원에서 한동안 수영을 쉬는게 좋겠다는 진단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진다. 혹시 수영을 못할까봐 피부과 치료나 염색 등을 미뤄왔던 기존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다.
처음 수태기가 찾아왔을 때 몹시 당황스러웠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수영이 그렇게 좋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는데,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는 사실을 말하자니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가지 않으니 억지로 몸을 끌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영복을 사보고, 수영시간도 바꿔보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봐도 예전과 같은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았고, 극복하겠다고 안간힘을 써볼수록 수영이 더 꼴보기도 싫어졌다. 내가 이렇게 사랑했는데도, 수영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들해진 마음으로 수영을 쉬면서 잠을 더 자기도 해보고, 줄넘기도 해보고, 독서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수태기가 맥 없이 끝나버렸다. 수영장으로부터 날아온 '휴관공지'. 수영장 내부의 공사가 필요해 잠시 수영장을 문을 닫고, 공사가 끝나면 재개관하겠다는 통지였다. 청개구리도 아닌데, 수영장에 갈 수 없게된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아침 수영장의 고요한 웅성거림, 적당히 차가운 물의 촉감, 특유의 칼칼한 물의 냄새까지 그리워졌다. 공지를 받은 다음날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심경으로 수영복을 챙겨들고 누구보다도 먼저 수영장에 가서 몸을 담그는 순간, 내가 수영에 권태를 느꼈다는 사실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후로도 수영을 해오면서 여러 번의 수태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시기가 찾아오면 당황하지 않고, 잠시 수영에서 멀어져 다른 즐거움을 찾아 떠나보기도 한다. 여행이 길어지면 집이 그리워지듯, 새로운 경험에 설레이다가도 일상의 친숙함이 그리워져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오게 될 걸 알기 때문이다. 꾸준함 속에는 열정과 재미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비어있는 시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자유형을 할 때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길게 뻗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글라이딩(Gliding)이 필수적인 것처럼, 수영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수태기라는 글라이딩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물이 나를 놓지 않고 기다려준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불 같이 사랑하고 권태기가 와서 멀어지고 나면, 후회하고 다시 돌아와도 상대방이 이미 떠나버려 관계가 이어질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 물은 다르다. 한참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가도,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들어가면 여전히 포근하고, 고요한 그 상태로 나를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