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속에서 발견하는 위로에 대하여
수영장에서는 어디에 서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하다.
수영장은 기본적으로 직선의 공간이다. 25미터 혹은 50미터로 규격화된 세로로 긴 직사각형 레인 안에서, 사람들은 일렬로 줄지어 나아간다. 그 좁고 긴 레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순서가 매겨진다. 맨 앞에 서면 물길을 가르는 선구자가 되고, 뒤에 서면 앞사람이 만들어낸 포말을 견디며 따라가는 추격자가 된다. 나의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앞사람의 거친 발꿈치와 뒷사람의 다급한 손끝 사이에서 내 고유한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한 위치를 찾아야 한다.
한번은 하루에 수영 강습을 세 번 연속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새벽 7시, 오전 10시, 그리고 11시 수업. 신기하게도 같은 사람이 같은 날 물속에 들어갔음에도, 시간마다 내 위치가 달라졌다. 새벽반에서는 맨 뒤에 서서 선생님께 지적을 받으며 힘겹게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10시 수업으로 넘어가자 어느덧 중간쯤에서 묵묵히 헤엄치는 사람이 되었고, 11시 수업에 이르러서는 어느새 맨 앞에 서서 전체의 속도를 리드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위치라는 것이 이토록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변함없이 나일 뿐인데, 함께 레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내 자리가 달라졌다. 만년 1등도 없고, 만년 꼴찌도 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가장 마음이 편했던 곳은 10시 수업이었다. 적당히 잘하지만 굳이 더 잘할 필요도 없는 자리. 뒤에 서 있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사람도 아닌 자리. 그 애매한 중간의 지점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반면 11시 수업의 맨 앞자리는 자랑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했다. 출발 전 쏟아지는 모두의 시선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내가 너무 속도를 내어 뒷사람들의 호흡을 가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새벽반의 맨 뒷자리는 또 다른 의미로 고단했다. 누군가에게 약하고 서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장녀 특유의 자존심이 불쑥 튀어나왔다. 앞사람과의 간격이 벌어질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수영 속도가 느리다고 속으로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래서인지 용의 꼬리도, 뱀의 머리도 아닌 그저 중간에 서 있을 때가 제일 자유로웠다.
그렇지만 모든 수업에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따로 있다. 바로 강습의 마지막 순간이다. 우리 수영장은 수업 마지막에 둥글게 서서 서로 손을 잡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한 시간 가량 직선으로 서로의 등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원을 이루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직선의 삶에는 경쟁이 있고, 곡선의 삶에는 1등이 없다.”
누군가의 이 말처럼, 원을 이루는 순간 레인의 순서는 마법처럼 사라진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에게 건네는 “수고하셨습니다”나 “오늘 수영 속도가 엄청 빠르신데요”라는 투박한 덕담 속에 직선 속의 경쟁이 씻겨 내려간다.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적당한 속도로, 적정한 내 자리를 찾아 헤엄치는 일에 대하여. 너무 앞서 빨리 나아가려 하면 물의 감촉을 즐길 여유도 없이 언젠가는 내가 지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타인의 눈치만 보다 무리하여 내 속도를 잃게 된다. 그렇게 본연의 위치에서 나만의 속도로 수영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모두 물 밖으로 나와 다시 원을 이룬다. 그때는 더 이상 앞사람도, 뒷사람도 없다. 그저 같은 원 안에 서 있는 다정한 동료일 뿐이다. 나는 이 짧은 곡선의 위로가 좋아, 내일도 다시 차가운 직선의 물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