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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영 Sep 03. 2024

우리의 기도문은 실수투성이다?

신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싶게끔 기도하는 방법


주여,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꿀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그러나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옵소서.

그리고 제게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


< 평온의 기도, 라인홀트 니부어 >


이무 『30년 만의 휴식』 중에서…



이 세상 모든 불안과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심에서 오는 게 아닐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 악물고 온갖 노력을 쏟고

정작 바꿀 수 있는 일들은 쳐다보지 않고 마음 한 구석에 방치시킨 채로...


마음의 평화는 인정으로부터 온다. 세상 일은 애석하게도 노력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 것 구별할 줄 아는 눈만 생긴다면 인생의 난이도는 과거의 EXTREME에서 내가 현재 아주 만족 중인 EASY 레벨로 자유자재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이 올바른 구별의 능력은 자아성찰에서 나온다. 가장 먼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떤 부분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손해 보기 싫어하는 마음인지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열하여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왜 나는 그 욕심에 집착을 버릴 수 없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계속해서 why? 질문을 하다 보면 궁극적인 나의 무의식적 결핍에 다다르게 된다. 그 결핍이 어디서 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을 걸어 집착할 만큼 큰 가치를 가졌는지 확인해 보라.


평생을 무언 가에 집착하며(노골적으로 말하자면-그 원동력으로) 살아온 삶을 한순간에 버리기엔 우리 안의 무의식이라는 존재가 호락호락하게 놔주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기존에 살아오던 습관; 즉 항상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불안이라는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기존에 세팅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기본값’대로 살지 않기 위해선 항상 생각하고 또 통찰해야 한다.

삶은 사는 대로 흐르는 게 아니고 이루는 대로 삶은 흘러간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하루에도 수백억 통의 기도를 받는 신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주길 바란다. 가령 무작정 ‘시험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 로또 당첨되게 해 주세요, 사업 성공해서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등의 해달라는 식의 기도는 앞으로는 지양하길 바란다. 신의 입장에서는 이 학생을 시험에 붙게 하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한 누군가를 떨어트려야 하고, 이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게 하기 위해선 절박한 누군가를 떨어트려야 하는데 하루에 셀 수 없이 고민스러운 결정을 하시느라 이미 머리카락이 다 빠져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창조주의 자식과도 같은 인간들이 밥도 굶으며 어린아이가 떼쓰듯 단식투쟁까지 한다면?

생각만 해도 이미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나는 단 하루도 신의 삶을 살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들은 대게 바라기만 하고 그 누구도 ‘예, 당신께서 결정하는 대로 받아들일 테니 그대로 하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얄미울까.


그러니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신의 눈에 띄어보는 건 어떤 가?

‘어떠한 결과든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결과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신께 온전히 맡기겠습니다’


혹시나 신이 감동받아 들어줄 지도…? (여기까지는 농담이다ㅎㅎ)

우리가 바라는 대로 뭐든 이루어진다는 게 궁극적으로 세상을 위해 좋다고 할 수 없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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