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화를 받은 그날 하늘은 유난히 맑고 따뜻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 너머로 작은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그 떨림에 동조하면 같이 무너져 내릴 까봐 오히려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저는 침착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 무작정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무시하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밤낮으로 일했던 그 식당으로... 평소에 차로 5분 거리였지만 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뛰다가는 이제는 유효해진 엄마와의 시간이 낭비될 까봐 택시를 잡았습니다. 귓가에 초조한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비록 지구라는 같은 땅 위에 있지만 저는 지옥에, 바로 옆에 서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를 통곡 속에 보내 드린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엄마의 암선고는 제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도 끝내 보내 드리지 못해 매일 밤 울며 잠든 지 한 달, 그리고 두 달째… 할아버지 장례식 때 넋이 나간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니 이미 차는 가게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차에서 내려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을 열기가 두려웠습니다.
불이 꺼진 텅 빈 가게에서 엄마는 눈이 부운 채로 애써 침착하게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제 머릿속에 스치듯 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의 겨드랑이 사이에 잡혔던 그 멍울이 암인 줄 알았다면 더 일찍 병원에 보낼걸. 가끔 제가 겪는 단순 림프 부종인 줄 알고 지켜보자고 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까부터 귓가에 들리던 째깍째깍 소리가 이제는 귀가 아닌 제 심장에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허망하게 보냈는데 이제는 엄마까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하늘이 미친 듯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제게 죽음이라는 시련의 연속을 주는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제 곁을 고작 몇 달의 시간차를 두고 떠난 베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왜 제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고, 그 당시에는 별로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맘 편히 하늘을 욕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날부터 우리는 부지런히 항암치료를 받고 살아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소식을 접한 첫 몇 달간은 저는 매일 악몽에서 소리를 지르며 깨곤 했습니다. 숨죽여 울지 않고 악을 쓰며 꿈에서 깨어났던 건 삶에 대한 억울한 심정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직장에 재택근무 전환을 신청했고 집에서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심장을 조이던 째깍째깍 소리는 점차 작아져 갔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시계소리는 희미하게 제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엄마의 시계가 점차 노후화됨에 저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의 시계를 금은방에 가져가 새로운 약으로 갈아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비싼 천만금을 달라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저의 시계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곗바늘은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함께 흐르지 못하는 걸까요? 그렇게 엄마시계는 저를 위해 매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시간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엄마, 이제는 나에게 안 울려줘도 되니까 잠시만 약을 빼서 일시정지 하면 안 될까? 엄마의 노후화를 멈추고 싶어. 나랑 같은 시간에 함께 흘러가자. 그때까지 엄마 편하게 쉬고 있으면 안 될까?’ 대답 없는 엄마시계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우리의 시계는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이미 멈춰버린 외할아버지의 시계를 바라보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