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
보통 우리는 어떤 사람이 문제나 고민을 가지고 올 때 그 고민을 들어주고 답을 내려 주지만,
우리 내면에는 그것이 ‘네 잘못’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것은 ‘너의 문제’이고 나는 그 문제를 상담해 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그의 문제이기도 한 동시에
‘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내 안에 어떤 문제가 없다면
그 사람이 그 문제를 나에게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가야 할 우리 공동의 과제가 된 것이다.
왜 그런 가?
세상은 완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 나에게 상담을 하려 왔겠는 가?
나와의 공유된 업이,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상대방의 고민을 들으며
사실은 내 안의 업을 닦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문제를 치유해 준다는 것은
곧 내 안의 문제를 치유한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법상 스님 『날마다 해피엔딩 』 중에서…
나의 업, 즉 나의 카르마와 상관이 없는 일은 나의 인생에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일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 것이 아닌데 내게 나타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이다.
우리는 모두 물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서로 연결되어있다.
불교의 연기법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나기에 저것이 나는 것이며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에도 그 사람의 일이라고 착각하고 선을 긋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나와도 연관이 있고, 내 안의 업을 닦기 위해 친히 찾아와 준 것이다.
몇 년 전 심리상담을 받을 때 나를 상담해 주신 원장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내담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소위 말하는 감정노동을 하는 원장님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라도 너무 무거운 얘기는 삼가고 싶었다. 하지만 깊이 사색해 본 결과, ‘우리가 만나게 된 인연이 무엇일까’의 답이 나왔다. 나와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를 통해 스스로의 업을 닦고 계심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굳이 나의 이야기를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더욱 마음을 열고 솔직한 상담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연기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의아하겠지만, 위에 서술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물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개의 다른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분별하지 말고 편가르지 말자. 우리는 태초부터 이미 하나의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