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돌아보면 행복한 기념일들 예컨대, 생일, 결혼일, 결혼기념일, 졸업식 날 같은 때보다도 외려 최악의 메모러블 데이가 더 추억에 남는다.
최악의 메모러블 데이를 은근히 축복하라. 당신의 생존을 기념하는 날이다.
김진애 『한 번은 독해져라』 중에서…
나의 생존을 기념하는 최악의 메모러블 데이를 메모장에 날짜별로 정리하여 적어보니 징하게도 살아남았던 나를 보게 되었다.
이게 되나 싶을 정도로 인생에 굴곡이 참 많았다. 나의 삶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까지 다 돌았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이로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나는 징하게 살아남았다. 아니, 사실은 살아남아졌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무심하게도 하늘은 단 한 번도 나를 데려가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은 없다는 걸 느낀다. 하물며 저 내리는 눈송이도 저마다 각자 자기 자리에 내린다고 하지 않았나. 이처럼 나의 잿빛 과거들의 이유를 알게 되면서 나의 인생은 다시 형형색색 알록달록 물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 이러려고 살아남았구나’
최악의 메모러블 데이를 달력에 표시해 두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히 축복하기 시작해 보라. ‘내가 정말 살아남았구나! 그럼에도 숨이 붙어 있구나!’라며 장하다고 어깨를 토닥여주라.
앞으로의 인생에 무방비상태에서 찾아오는 불행을 이제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