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야기 11
음악과 이야기 11 : Version of Me - Sasha Sloan (사샤 슬론)
싱어송라이터 사샤 슬론의 2018년 발매작 'Loser' 앨범의 4번 트랙
‘Can you love the version of me'
나의 이런 모습도 사랑할 수 있니
'The wrong place if you're lookin' for Heaven'
네가 천국을 찾고 있다면 난 아닐 거야
카멜레온. 팔레트. 더러는 가면이라고도 부르지만. 그런 모습도 나라면 너는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내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왜 그럴까 생각했다. 꺼내 보이기 어려운 속마음이 커져서일까. 이를테면 우울에 젖거나 붕 뜬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해서. 또,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을 일기에 풀어놓을 시간이 필요해서. 하지만 꼭 그렇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내 안에 내가 차지하는 지분은 너무나도 크다. 그리고 다른 세계를 마주할 때면 이따금 그의 색깔을 내게 투영하기도 반대로 내 색을 그에게 덜어 놓기도 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진정 고마운 일이지만 가끔은 부담이 되었다.
내가 이런 색으로 있어도 될까. 얼른 이 물감을 씻어 내고 싶어.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이 씻어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색이 있다. 피부가 다 벗겨질 때까지 문질러 보고 나서야 나는 그것을 나라고 부르기로 했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내게는 노랑도 파랑도 빨강도 초록도 있다. 다만 그것은 머무르다 가는 객과 같은 감정이 아니다. 감정과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내게는 명량한 면도, 유약한 면도, 다그치는 면도, 말 수가 없는 면도 있다. 그것을 정하는 것은 상황의 지분이 가장 크면서도 역설적으로 지속이나 반전을 꾀하는 촉매는 내 의지에 따른다. 하지만 더욱이 역설은 그 의지 역시 상황에 따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진다는 점이겠지. 여기서 스피노자의 철학으로 넘어간다면 이야기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꼭 믿는 것이 있다. 한 번을 스친 수많은 누군가에게 나는 각기 조금씩은 다른 색을 한 채로 인식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수없이 만난 누군가가 나를 볼 때면 여러 벌의 옷이 겹쳐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도통 나아지지 않는 두려움은 거기서 파생한다. 내 빨강을 좋아한 이에게 새파랗게 질린 나를 보이는 일 따위가 그렇다. 그러면 내 파랑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되지, 라고 하기에는 내게는 빨강도 있고 그러다 타버린 검정도 있는데.
어떤 색의 내 모습이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는 말 앞에 아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일은 올바를까. 나 역시도 그의 어떤 모습을 다 알지 못하고, 사랑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럼에도 이 곡을 들을 때면 잔결한 묵음을 던진다. 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