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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말고 그대로

음악과 이야기 13

by 수영

음악과 이야기 13 : saki - yonige (요니게)

일본 밴드 요니게의 2017년 발매작 'Girls Like Girls' 앨범의 7번 트랙


'ずっと変わらないでねきみのままでいて'

늘 변하지 말아 줘 네 모습 그대로 있어 줘




21년도 초부터 3년 넘게 블로그를 써 오며 백 편이 넘는 짧고 긴 줄글을 남겼었다. 올리고 지운 글까지 합치면 이백 편 가까이 된다. 그간에 수많은 연이 오고 갔다. 그중 몇은 나를 떠났고, 몇은 이제 내 소식을 겨우 흘겨보며, 그 외 몇은 아직 남았다. 새로 생긴 인연도 몇 있다. 그러는 와중에 그치지 않고 미련하게 이어 온 것은 아마도 글을 쓰는 나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 전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요니게의 첫 내한 공연을 보러 갔다. 요니게를 내가 처음 알게 되었던 때는 19년도로 기억한다. '요니게(夜逃げ)'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야반도주, 사전적 정의로는 '남의 눈을 피해 밤중에 도망간다'는 의미이다. 그때 처음 들은 곡이 이 곡이다. 나는 거기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그때 도망쳤더라면 수많은 연을 마주칠 일은 없었겠다. 글을 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분주히 떠돌며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혹은 차라리 다른 일에 정착하여 글은 쳐다도 안 보며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망치지 못한 곳에는 글이 남았고 15년도부터 시작된 요니게의 이야기는 24년도 초에도 이어졌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달라는 약속은 아무래도 지키지 못했다.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쓰지 못한다. 그때보다 더 나은 글인지 퇴보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더 솔직해지지는 못했다. 순수해지지 못했다. 그것에 관해 생각하니 며칠 전 김소연 시인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책에서 본 어느 문구가 떠오른다. "사랑 앞에서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끝없이 사랑과 삶에서 지혜로워지기를 바랐다. 보다 성숙해지고, 불가해함을 해소하고, 끝내 자유로워지기를. 하지만 왠지 그런 마음을 갈구할수록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 저절로 이해타산을 따지고,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닌 남이 보는 나를 상정하고, 겨우 용기 내어 행동한 일도 금방 무르게 되었다. 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헤밍웨이처럼 글은 살아가는 자의 산물이라 생각했지만 내 미숙한 방식으로 행한 삶에서의 성숙에 대한 희구는 글에서 순수성을 잃는 일로 이어졌다.


내 모습 그대로, 글 그대로 있지 못하고 떠나보낸 글과 사람들이 떠오른다. 반대로 그들을 보내면서 나 스스로 바뀌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적어 온 유일한 내 벗이 이 글이라면, 아직도 내게 글이 머물러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적어나가고 싶다.


앞으로는 블로그가 아닌 누가 쉬었다 갔는지도 모를 이 브런치에서 계속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그간 함께 해 온 블로그에게 고마운 작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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