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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보다 훨씬 많이

음악과 이야기 14

by 수영

음악과 이야기 14 : 침묵 - Summer Soul (써머소울)

싱어송라이터 써머소울의 2019년 발매작 'Five Senses' 앨범의 1번 트랙


'If you can't hear me one day I'll promise to dance for you'

만약 어느 날 네가 날 들을 수 없다면, 널 위해 춤을 추겠다고 약속할게


'널 많이 사랑해 사랑해 내 자신보다 훨씬 많이'




정신, 육체, 금전, 가정, 혹은 그 외에 어떤 치명적 결점은 진정한 사랑 앞에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얼마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할 이유를 찾으려 해도 매한가지인 것처럼.


사랑의 극성, 혹은 무엇을 바쳐도 좋을 듯한 그런 마음에 관해 노래하는 곡들에 이끌린 때가 있다. 사실 이 앨범에서 귀에 팍 꽂히는 곡은 이 '침묵'이라는 1번 트랙보다 3, 4번 트랙에 가깝다. 공통된 제재는 A.I. 풀어서,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 지능) 혹은 가수의 의도를 고려하면 Artificial Impression (인공 인상(印象))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 앨범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의 앨범명 역시 'Five Senses'가 아니라 'A.I. (Artificial Impression)'였으며 앨범 표지도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괜히 이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여기에서 떠오르는 의문 때문이다.


사랑할 이유를 찾으려면 얼마든 찾을 수 있고 또 미워할 이유도 마찬가지라면.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에게 갖는 감정은 취사선택적이며 인공적, 가공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답을 먼저 정하고 풀이를 써내리는 격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떤 형태의 의도적인 반지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직관이 크게 작용하는.


그것이 혹자는 과도기적인 사랑일 뿐이라 말하더라도 그런 과도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사랑의 완숙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내 주관이다. 어느 날 그가 나를 들을 수 없게 되더라도, 그런 그를 떠나지 않고 그의 곁에서 시각적 매개로 사랑을 전하려는 그 치열함. 그런 애틋함 혹은 미끄러지는 몸짓이 사랑이 잉태되는 과정이라고 믿은 것이 나를 이렇게까지 헤매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양가적으로 떠나보낼 이유를 어떻게든 찾는 것도 사랑 앞에 놓인 인간의 모습이니까. 그런 면을 더 많이 보고 또 보이고서도 사랑을 아직 믿는 내가 우스워 보인다.


나 자신보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아직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 또 나 자신을 포기할 만큼 무언가를 더 사랑하는 일이 내게 있어 가능한지, 그래야 할 필요가 정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사랑에 대한 호기심이 가끔은 지나쳐 걸림돌이 될 만큼 내 세상을 두드린다. 분명 존재한다고 믿지만 아직 해금되지 않은 어느 신대륙처럼. 평평한 땅의 끝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혹여 그전에 좌초될지 몰라도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을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어릴 적 책상 위 지구본처럼 이 곡은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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