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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언제쯤 죽을지는 몰라도

음악과 이야기 15

by 수영

음악과 이야기 15 : 삐뽀삐뽀 - 김뜻돌

싱어송라이터 김뜻돌의 2020년 발매작 '꿈에서 걸려온 전화' 앨범의 8번 트랙


'이 밤 저 밤 헤매다 내가 사라지면

그제서야 찾으러 전화하지는 말아요'

'나는 내가 언제쯤 죽을지는 몰라도

누군가의 희생과 바꾸지 않았으면 해'




꽤나 이름 있는 보드게임 중에는 '인생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은퇴하고, 죽음에 이르는지가 주사위 눈금과 참가자의 양자택일로 정해지는 직관적인 게임이다. 대학에 갈지 말지, 결혼을 할지 말지, 아이를 가질지 말지 등이 존재하는, 어떻게 보면 생의 여타 선택요소들은 배제된 축소판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것을 삶에 대입하는 것은 비약이지만 나는 이 게임에서 삶에서의 가치 판단과 연관한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보드게임의 순위는 은퇴 후 자산 총액의 크기로 결정된다. 과정이 어떻든 정해진 계산법으로 합산한 은퇴 후 총자산이 가장 큰 사람이 결국 승자인 것이다. 조금은 웃기다고 생각했다. 다른 참가자보다 훨씬 파란만장하게, 또 작은 집에서 배우자와 자녀 없이 살아도 이론상 게임에서 우승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 우승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것이 패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삶에서 승리도 패배도 없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아쉽지 않게 사는 것일까. 그것이 지금 당장의 기분이든, 되돌아보았을 때 드는 소회든 간에.


나는 유독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받고 있는 취급에 언제까지나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물론 내 노력의 여하에 따라 상황이 점진적으로 나아진다는 긍정적인 가정을 꽃밭처럼 두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달리는 이 레일이 곧 내게 해소되지 않는 갈증감의 근원이자 이유라면 나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어린 시절 그런 갈증감을 단편적으로 인지했을 때는 이를 단지 야망이라는 단어로 치환해 거두절미했다. 닿기 힘든 저기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보다 더 대우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쓰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지만 비유하자면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존중받고 싶다고. 나를 떠받드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어디서든 무시받고 싶지는 않다고.


그런 마음으로 벌써 꽤나 시간이 흘러 일을 하고 면면을 상대하면서도 가시지 못한 갈증이 마음의 발을 달고 어딘가로 나를 향하게끔 한다. 또다시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도 어릴 적부터 누가 시켜서 해낸 일은 하나 없고 그 갈증감만이 내 유일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김뜻돌의 이 곡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곡의 모티프인 경시받는 것, 또 소홀히 여겨지는 것. 아마도 그것을 지각하는 역치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을 판단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각자에게 주어진 자기 결정권이라면 나는 어떤 힘의 작용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에게 불가항력적인 것도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고 매일 묵살되는 수많은 비명들이 있을 것이라고. 가삿말처럼 때로는 희생과 눈물과 돈과 명예로, 어쩌면 다분히 정치적으로 이용되곤 하는 수많은 개인의 비극들. 무지와 무관심한 나이기에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판을 바꾸려는 마음은 나를 포함해 나와 가까운 것을 바꾸는 일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그런 게임체인저가 되고 싶지만 나는 아직 나 스스로에게 급급하다. 정신 바짝 차리라고. 김뜻돌의 이 곡은 이런 내 안의 나를 흔들어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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