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야기 18
음악과 이야기 18 : 최엘비 유니버스 - 최엘비
래퍼 최엘비의 2021년 발매작 '독립음악' 앨범의 8번 트랙
'주위를 함 둘러봐봐
네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도
살아온 삶이 있다는 거'
휴대폰 화면에 뭐가 묻는 것이 싫어 늘 매끈히 닦았다. 그러나 손을 아무리 깨끗이 씻어 닦아도 결국 다시 떼가 묻었다. 그렇게 닦고 만지고 닦고 만졌다. 개의치 않는 편이 나았다. 정작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건드렸는지, 손에 쥐었는지 신경 써야 하는 그런 것들은 놓쳤다.
어떤 곳에 시선을 두면 내가 남긴 오점들, 얼룩이나 흠집이 더 잘 보인다. 달리 보면 내가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고, 또 액정에 비친 내 얼굴이 보인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최엘비의 '독립음악' 앨범은 21년도 말부터 22, 23, 24년도에도 내게 일부가 되어 주었다. 전곡을 쭉 재생하기를 선호했지만 시간이 흘러 여러 일들이 오가며 귀에 꽂히는 곡은 조금씩 달랐다. 처음에는 '주인공'에서부터 '독립음악'까지의 흐름이, 22년도에는 '도망가!(feat. 브로콜리너마저)', 23년도에는 '살아가야해.', 그리고 올해는 이 곡과 '슈프림'이 그러했다. 그 미묘한 감정의 파랑 위에 때로는 나를 가볍게 싣기도 했고 또 푹 기대어 죽을 것처럼 울기도 했다.
이 '최엘비 유니버스'라는 곡은 앨범 전반의 변곡점이 되는 곡이라 생각했다. 막간을 암시하는 7번 트랙에서부터 이어지는 멜로디의 이 곡의 말미에서부터, 최엘비는 자신이 속하던 세상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거두고 제대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어쩌면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 1'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여기던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재고한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 것은 달리 말하면 자신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일지 모른다. 무심코 지나쳐 온 수많은 과거의 자기 자신을 역행한 미래(혹은 현재)의 또 다른 내가 인정하는 이야기. 감상자인 나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지난 나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그것들이 모여 나를 만들었다. 때가 묻는 기분 나쁜 경험이 싫어 건드려 살아가지 않았다면 역설적으로 아무도 화면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최엘비의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화면과 함께 그 너머에는 내가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