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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는 꽃도 시들고 있지 않은지

음악과 이야기 19

by 수영

음악과 이야기 19 : good morning - a子(ako)

일본 싱어송라이터 ako의 2024년 발매작 'GENE' 앨범의 1번 트랙


'今に咲いていける花も潰れてないか'

지금 피어나는 꽃도 시들어 가고 있지 않은지


'人が進むべき道がいつも険しいことだらけでも

사람이 나아가야 할 길이 언제나 험난한 것 투성이라도

時間がくれば終わるし何も残らない'

때가 오면 끝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




마침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금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기록해야만 하는 무언가였다.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조차 금세 잊어버리곤 했으니,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일도 이로써 마지막이어야 할 것이었다.


지하철 안 빼곡한 사람들 틈에서 맡은 향수 냄새처럼 겨우 문 밖을 나가면 잊어버리는 것들을 종종 떠올렸다. 어느새부턴가 내 기억은 그런 식으로 단편적으로 바뀌었다. 건망증이 심해진 것일까.


나도 모르게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기보다는 기억에 남는 것들을 중요하다 여기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좇아 온 것들이 얼마인지 모른다. 첫사랑, 일본의 풍경, 겨울철 별자리, 어떤 노래와 영화, 김금희의 소설 단편. 역시나 단편적인 것들이다.


낭만을 연료 삼아 누구보다 빠르게 달렸는데도 때로는 반대편 열차를 탄 것처럼 돌이킬 수 없게 멀어져만 가기도 했다. 정말 마주해야 하는 것과 기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매번 그렇게 깜빡. 깜빡 잊은 게 아니라, 겨우 깜빡할 세 나를 스쳐 지나간 것이라 내 것이 아니었다고 애써 믿었다. 그런데 내가 아닌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나와 닮은 무언가가 하나 없는 것일까.


피어난 꽃을 외면한 내게 너무 가혹한 긴 여름이 온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사랑받고 있는데 사랑을 줄 수 없다. 미움을 주고픈 곳도 마땅히 없다. 이런 나에게 너무 지쳤나, 나는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은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요쓰야산초메 역 근처 편의점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다. 몇 달 전에 a子가 내한을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건 이 곡이 발매되기 전이었다. 몇 달 사이에 그에 대한 기대가 바뀌었다. 그가 피어 올린 이 앨범 전곡을 들으며 나도 무언가를 피어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펑, 하고 쏘아 올릴 수 없어 저 높이 관 너머로 꾸역꾸역 밀어 올려야 하는 것일지 몰라도.


기억력과는 별개로 건망이 심해질 때면 왜인지 내가 단명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어떠할까 굴곡이 있어도 누가 뭐라든 끝내 멋진 삶이었다고 나는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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