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야기 22
음악과 이야기 22 : Interlude - 창모
래퍼 창모의 2018년 발매작 '닿는 순간' 앨범의 7번 트랙
비가 한바탕 쏟아지던 그날 강물은 가득 범람해 강변의 잔가지들을 덮쳤었다. 퍼붓고 또 쏟아져 흘러내리고, 마치 그날 밤 모래밭에 적은 글씨처럼 형태를 잃어버린 것들 투성이었다. 사진으로도 알아볼 수 없다던 그 말처럼 언젠가 기억과 함께 숨을 거둘 것들이었다. 떠내려 온 옷가지에 묻은 오물에서 누군가 살아온 흔적을 보았다. 어쩌면 그마저 삶이 떠나고 난 뒤 수장을 치르듯 훼손된 흔적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날 나는 안으로 차오르는 물을 퍼내려고 애썼다. 물이 새어 나가는 구멍을 막는 일과 새어 들어오는 물길을 막는 일은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여러 의미로 불가역적이라고 느꼈다. 물이 끝까지 차올라 잠기고 숨길이 닫혀서 끝내 모든 생각이 불가능하게 되고서야 수위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치 정말이었다면 이미 생을 한 번 달리하였을 것처럼 나는 그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모든 일에 자책하지는 말라는 말을 생각했다. 나는 모든 일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었다. 하물며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이더라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자세, 여러 미묘한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 아니면 우스갯소리로 덜 아프게 다치는 법이라든지- 그것도 꽤나 중요하다고. 그가 웃었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라고 했다. 허, 의미 없는 건 없을 걸 아무래도.
그런가. 그때 했던 의미 없는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의미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로 바뀌는 동안에 나는 잠기고 풀려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마치 자백을 강요받고 더 이상은 지쳤다는 듯이 비굴해졌다. 더 이상 숨이 끊기는 그 아픔이 아프지 않았다. 씻겨 내리는데도 어째서 찌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도 특별하지 않다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 다시 시작하는 일 자체는 그렇게 힘이 들지 않았다. 소중한 것을 잃어도 닮은 것을 다시 구하면 그만일 터였다. 그러나 앞으로도 소중한 무언가는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 더욱이 앗아가 버리고, 또다시 대체될 것이라 여기는 것은 소중해지지 않았다. 소중한 것을 정말 소중히 여기려 할 때면 그 조건 중 어느 하나가 늘 들어맞지 않는 것이었다.
모락모락 김이 서린 저 창 너머로 보듯 내 눈에도 세상이 한없이 아름답게 보였다면 좋았을 텐데. 첨예한 마음을 꼭 쥐면서도 이보다 아픔을 덜 느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한때의 수몰이 걷히고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듯한 이 땅에, 어쩌면 당분간은 조금 힘들겠지 생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잃어버린 것은 가족사진, 잠만보 인형, 네모난 어항과 관상어 한 마리... 아니지 남은 것은 검은 운동화, 챙 달린 모자, 조금 금이 간 화분, 사탕 단지...
그래도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내 모습을 비추는 벽거울은 의외로 멀쩡히 달려 있었다. 그러자 안심이 되었다. 남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면 언젠가 공들인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닮은 무언가를 지나간 것에 투영하지 않고 새로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