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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없을 것 같던 낙원으로

음악과 이야기 23

by 수영

음악과 이야기 23 : 낙원2019 - 김승주

싱어송라이터 김승주의 2023년 발매작 '소년만화 상' EP의 5번 트랙


'난 너의 상처가 되기 싫어

난 너의 기쁨이고파

내일이 기다려지게 살고 싶어'



있잖아, 시험이라는 것은 평소대로만 해도 성공일 텐데. 요행을 바라지 않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친구가 물었다.


중요한 시험이든, 면접이든, 첫인상이든, 아니면 그 어떤 찰나의 기회든 그것을 포착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살면서 엄청난 이득을 지닌다. 이상하리만치 기회에 강한, 대개 강심장이라고 불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꼭 있다.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그에 비하여 너무 약심장만 아니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평균이 곧 수치적인 기댓값을 의미하듯 시행이 무수히 많아질수록 결과는 기댓값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삶의 기회들, 시행들은 조금 다른 형태를 띤다고 생각했다. 한 번 거며 쥐기만 한다면 더 이상 주사위를 굴리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시험에서 목표하는 성과를 거두면 다시 시험에 응시할 필요가 사라진다. 합불을 가르는 면접이나 누군가와의 성공적인 연애나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 이후 상황을 지속하고 나아가 발전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드물게 찾아온다. 더할 나위 없는 회사의 최종 면접을 앞둔 순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인연, 일 년 혹은 몇 년에 한 번 치러지는 시험 같은 것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정말 능력이 충만하다면 그 면접을 망치더라도 다른 여러 회사에 합격하겠지, 매력이 넘친다면 그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연애의 기회 속에서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또 시간 배분이든 실수 관리든 실력이 출중하다면 충분히 검토할 여유까지 가지며 시험을 잘 치러 내겠지. 전부 맞는 말일지 모른다. 애초부터 기댓값이 뛰어나다면 아무리 운이 좋지 않더라도 시행을 늘렸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물론 모든 척도가 기댓값을 있는 그대로 지시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변수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다. 변수가 없다면 상대적 약팀이 치르는 스포츠 경기는 무슨 재미로 응원할까. 또 낭떠러지도 사다리도 없이 언덕뿐인 세상에서, 게으르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로봇 토끼들과 로봇 거북이들의 뻔한 경주가 펼쳐질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걷는 길에는 아무 변수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에 상관없이 내가 가진 능력과 내가 쏟는 노력만을 변수로 하는 어떤 등식의 결괏값이 산출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는 역설이다. 어쩌면 이미 내가 가진 것들과 앞으로 내가 가질 수 있는지의 가능성에도 운이 개입했을 것이다. 그러니 흔히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할 수 있는 한에서 다들 최선을 다하려 하는 것이겠지. 또, 마지막에서는 행운을 비는 마음 역시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없이 커지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어쩌다 불운하게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또 나누어 주게 되더라도 아직 내게 남은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만큼. 지나간 일에 너무 아쉬워하지 않게끔. 언젠가 나 역시 그나마 가진 것들을 지키기에 급급해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 더 먹어두어야 한다.


마치 낙원을 찾는 것처럼 허황된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게 간단한 일이냐고. 이 경기장에서 내 체급, 입지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반대로 한때는 세상에 영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며 살아가도 좋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를 가로막는 벽쯤이 나타나면 악을 쓰고 소리쳐 두드리면 될 것이라고.


그렇게 하면 언젠가 벽이 무너질지도 모르나 꼭 그런다는 보장도 없고 또 얼마큼 희생이 따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벽을 극복하는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적어도 내게 그나마 가장 쉬운 것은 언제나 그 벽을 타 넘는 일이었다. 운이 없는 편이었을까. 올려다 보며 기도하거나 때를 쓰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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