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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Oct 16. 2018

프롤로그

'내' 집도 내 '집'도 아닌, 내가 지나온 방에 대한 이야기

열세 살 때부터 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삼 남매 중 가운데인 나는 어릴 적엔 남동생과, 남동생이 조금 큰 뒤로는 언니와 방을 같이 썼다. 내가 스물네 살이 되던 해, 나는 11년 만에 다시 '우리'방이 아닌 '내'방을 가지게 되었다. 언니는 아름다운 5월의 신부가 되어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스물여섯. 나는 '내' 집도 아니고 내 '집'도 아닌, '주인 할머니가 세 놓은' 월세'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도둑처럼 찾아온 조국독립처럼, 나의 독립도 그렇게 갑작스러웠다. 독립이라기엔 뭐한, 절반의 독립이긴 했지만.


서른둘을 두 달 남긴 지금, 나는 서울에서 여섯 번째 집으로의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내게 일어났던 일들은 모두 '그때 살던 집'을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 집이 떠오른다. 구남친에게 자니,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처럼, 그 방들에게도 잘 지내지,라고 묻고 싶다.


결혼하지 않은 이십 대 후반-삼십 대 초반에게 혼자 사는 집이란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임시거처 같은 거라고 배워왔다. 자가도 아닌데 뭐, 심지어 전세도 아니고 월세인데 뭐, 결혼하면 떠날 건데 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사는 집은 또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잠시 거쳐가는 곳이 되었고, 안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일은 당연히 유보해야 할 일이었다. 단순히 인테리어를 하냐 마냐를 넘어서, 마치 돌아갈 곳이 있는 실향민처럼, 정착이나 안정과는 거리를 두었다. 정작 집을 뺀 나머지 모든 것은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한 시간 그 자체였는데 말이다.


지난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때 그 방을 생각하며 돌아보기로 한다. 노래방, 동아리방, 과방만큼이나 내 삶의 중요한 '역사'들이 이루어졌던 자취방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기록이고 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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