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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Oct 25. 2018

심플하게 사는 것

성실하고 단순한 탄자니아에서의 하루하루

탄자니아에서의 삶은 이중생활에 가까웠다. 낮에는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이 되면 전기 펜스로 둘러싸인 요새에서 사는 생활. 처음에는 그 간극에 못내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사냐’며 걱정했지만, 사실 내가 살았던 집은 평생 동안 살아왔던 집들과 비교해도 크게 나쁘지 않았는걸.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안전과 나의 안녕이 보장되어야 지구를 구하든 영수증을 붙이든 뭐라도 낯선 땅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앞마당엔 잔디밭과 파파야 나무가, 뒷마당엔 망고나무가 있는 근사한 집이었다. 도도마는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시 격인 행정도시로, 국회가 열릴 때에만 사람들이  몰린다. (내가 돌아온 후에는 주요 행정기관의 도도마 이전 계획이 추진되었다고 들었다). 내가 살았던 골목엔 한 집 걸러 한 명씩 국회의원이 살았고, 총리 집도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모두 비어있었다. 빈 집은 보안요원과 가정부가 관리했다. 저택에 딸린 작은 집에서, 빈집을 매일같이 쓸고 닦는 이들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휴가철이 끝난 관광지 같은 느낌을 주는 동네였다. 관광객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 해수욕장을 지키는 해양구조요원이나 파라솔 장수처럼.


멋진 집이었지만 태생적인 한계는 있었다. 단수와 치안이었다. 도마뱀이나 듣도보도 못한 벌레는 애교 수준이었지만, 가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도도마는 ‘세미 데저트’라는 별명이 붙은 도시다. 집집마다 거대한 물탱크를 달고 있지만, 오후 2시 정도가 지나면 단수가 됐다. 국제기구 건물에도 언제나 커다란 대야에 물이 받아져 있었다. (내가 있을 때 코오롱인더스트리에서 댐으로부터 도도마 타운까지 수도관을 설치하는 EDCF 사업을 하고 있었으니... 지금쯤은 완공이 되어 물 사정이 좋아졌을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비가 점점 오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녁에는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에서 녹물이 섞이지 않은 물로 샤워를 할 때면 입이 썼다. 기후변화는 누군가에겐 생활의 불편함 정도라면 - 심지어 한국에는 큰 영향이 없다. 날씨가 이상하다... 정도겠지 - 누군가에겐 생명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안전 문제다. 매일 밤, 나는 집 안팎의 모든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고, 전기펜스의 스위치를 올리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가끔 들쥐나 새가 전기펜스를 스치고 지나가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릴 때면, '별일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안함에 잠을 설치곤 했다. 치안 문제는 집 안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탄자니아에 사는 1년간, 나는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위험했다기보다는 일종의 (이상한) 마인드 컨트롤 같은 거였다. 로컬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면 항상 입구 쪽에 앉아서 탈출로를 확보했고, 유사시 창문을 깰 수 있을만한 도구가 있는지 확인했다. 제대로 된 안전 지침이 없으며, 있다고 한들 아무도 그것을 지키지 않고, 경찰과 119, 병원이 작동하질 않으니, 믿을 건 오직 내 몸뚱이와 판단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붕에 산더미처럼 짐을 싣고 달려가는 버스에 타 있다 보면 커브길에서 중심을 잃거나, 다 닳아 없어져 평평해진 타이어가 미끄러지거나, 자갈길에서 타이어가 터지거나, 역주행하는 오토바이나 바자지와 부딪히거나, 적재 기준 용량을 한참 넘긴 화물이 쏟아져 내리거나, 20-30년 전 일본과 중국에서 들여온 중고 버스의 브레이크가 고장 나거나, 엔진이 과열되어 불이 나거나 하는 일들은 불안이 빚어낸 망상이 아니라 충분히 발생 가능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스템'이 없는 국가의 국민이 떠안고 살아야 할 위협은 그런 것이었다.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감수해야 할 것은 단지 '빈곤' 뿐만이 아닌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내가 배운 것은 역설적으로 성실하고 단순한 하루의 중요성이었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포만감을 느끼도록) 챙겨 먹고,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집을 나서기 전엔 살충제를 방 모서리와 부엌 싱크대 아래, 화장실, 거실 벽 쪽에 구석구석 뿌리고, 팔과 다리, 목에 모기기피제를 바르고, 총 7개의 열쇠로 문을 잠갔다. 저녁에 돌아와서는 부엌에 널브러진 바퀴벌레 시체를 치우고, 전기 펜스 스위치를 켜야 했다. 식사 전후에는 데톨을 묻힌 행주로 부엌을 닦고, 자기 전에는 침대에 모기장을 치고 또 한 번 모기기피제를 발랐다.


이것들은 모두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야 하는 과업 같은 것이었다. 피로 누적과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은 곧 말라리아를 의미하고 - 나는 도착하자마자 과로로 인해 열흘 만에 말라리아에 걸렸다 - 순간의 방심은 도난사고나 강도,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구호개발 NGO워커로 현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심각한 책을 읽으며 매일같이 '개발'과 '빈곤'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았지만, 사실 정말 필요한 것은 '심플하게 살기'였다. 잘 먹고, 잘 자고,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줄 것들을 항상 준비해 두는 것.


휴직 후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자니, 한국에서도 그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 같다. 잘 먹고, 운동하고, 잘 자고, 작은 일에는 무던해지려고 애쓰면서. 내가 사는 곳을 언제나 안전하고 편안한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무엇보다 퇴근 후에는 스위치를 끄고 나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직업인으로서의 나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지키는 것.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가더라도 이 '심플하게 사는 것'을 잊지 않아야지. (급 초딩일기 같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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