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방 몇 군데로부터 책 판매금을 정산받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뿌듯하고 신기했다. 내 새끼들을 책방으로 보낸 지 이제 한 달쯤. 아직도 계속 신기하다.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니 책이 팔리긴 팔리는구나 싶은데, 도대체 누가 사가는 걸까 궁금해.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어쩌다... 사셨어요?"라고 물어보고 싶다.
2. 오리고기에 꽂혀서 몇 주째 매일 같이 오리를 먹고 있다. 처음엔 그냥 구워서 쌈무에 싸 먹다가 지난주부터는 오리 냉채를 해 먹는다. 오이, 양배추, 파프리카 등등 채소를 채 썰어서 겨자 소스와 쉐킷 쉐킷 섞어 먹으면 여름 보양식이 따로 없다. 소소한 팁이 있다면 프라이팬에 키친타월을 깔고 오리를 구우면 꼭 쪄낸 것처럼 기름기도 없고 부들부들해진다는 것! 헤헤.
3. 미루고 미루던 옷장 정리를 드디어 했다. 5월부터 반팔을 야금야금 꺼내 입다 보니, 행거에 스웨터와 리넨 원피스가 나란히 걸린 채로 한 달 반이 지나갔다. 정리해놓고 보니 참 일정한 옷 색깔들. 소름 돋게 일관적인 취향.
4. 한동안 안 보던 넷플릭스를 다시 알차게 봤다. 이틀 동안 지정 생존자 시즌1편을 뗐다. 참고로 시즌1은 22편이고 1편당 45분에서 50분 분량(...)
5. 인생에 운동을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는데, 거의 6개월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어제 저녁부터 기분이 좀 안 좋고, 자고 일어났는데도 도통 나아질 줄을 몰랐다. 운동이고 뭐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그래도 몸을 일으켜서 운동하러 갔다. 오늘따라 선생님을 하체와 등 운동을 아주 빡쎄게 시켰고,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땀 흘리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샤워를 하고 미역국을 끓여 밥을 먹으니 더 좋아졌다.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인 만큼 근육도 참 안 붙는 몸이지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6. 소설도 영화도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과도하게 닫힌 결말을 좋아한다. 심지어 일 할 때도 "일단 좀 더 보고"라던가 "We'll see"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사람 관계에서는 유독 모질게 군다. 뭘 두고 본다는 거야. 나는 빨리 결론을 내고 싶고 맺거나 끊고 싶고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싶었다. 그런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깔끔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사실은 불확실함을 견디기 싫었던 내 불안 때문이었겠지. 덕분에 "모 아니면 도" 식의 의사결정을 하거나, 상대에게도 그런 걸 요구했던 적이 많았다. 어제도 그럴 요량으로 누군가를 보자고 했는데, 결국에는 실패했다. 나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글쎄,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이상한 결말이 되어 버렸는데. 전투 의지를 상실한 것일지도 모르지. 나도 이번엔 좀 회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어서. 그냥, 렛잇고 해보려고.
7. 바야흐로 할 일이 없어졌다. 책 만들고 서점에 보내고 메일 쓰고 하는 바쁜 시간이 지나고. 이제 조금 한가해졌다. 아, 연구 기금 딴 것 때문에 인터뷰도 해야 하고 8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보고서도 써야 하긴 하지만.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는 일단 한 숨 돌리면서 조금 한가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보고. 그냥 좀 뒹굴거리면서 보내보려고. 8월에는 다시 일하러 돌아가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