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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Jul 02. 2019

어쨌든, 방콕

<아무튼, 방콕>을 읽고

생일 선물로 <아무튼, 방콕>을 받았다.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에 최애 여행지인 방콕이 더해졌으니 내게 꼭 맞는 선물이었다. 여행기인 줄 알았는데 읽고 나니 연애 이야기였다. 마지막 장을 덮으니 책 뒤표지에 적힌 카피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호텔 방과 고요한 수영장의 도시, 방콕. 뜨거운 태양 아래를 소요하는 아주 보통의 연애담".


방콕엔 네 번 가봤다. 이천 구 년인가 십 년쯤에(그러니까 십 년 전에) 처음, 이천 십오 년에 다시, 이천 십칠 년에 또 한 번, 이천 십팔 년에 다시 또 한 번. 네 번 다 방콕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치앙마이나 꼬따오 같은 태국의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거나 주변국을 여행하던 중에 거쳐가는 곳이었다. 매번 길어야 삼사일 정도를 보냈을 뿐이지만 그때마다 나는 방콕이 좋았다. '레이디 보이'와 히피 여행자로 대표되는 카오산로드가 방콕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에도, 시암 파라곤이나 센트럴 월드 같은 대형 쇼핑몰 안에서 주눅이 들었던 때에도, 짜오프라야 강 주변이나 룸피니 공원에서 고요한 아침을 맞았을 때에도, 에까마이나 텅러 지역 에어비앤비에서 관광객이 아닌 것처럼 지낼 때에도. 하지만 내가 방콕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빠져나갈 때다. 밤 비행기를 타고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해, 지하 1층 주차장에서 퍼블릭 택시를 잡아 타고(지하철이 다니는 시간이라면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한다), 도시의 어둠을 헤치고 고가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그때 기사 아저씨와 나누는, "Is this your first time in Bangkok?" 같은, 다정하고 뻔한 문답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세븐일레븐과 미백 화장품 광고판들. 아, 방콕이구나!


네 번의 방콕 중 가장 좋았던 건 작년이었다. 첫째로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였기 때문이고, 둘째로 작년 8월엔 세상사에 찌들 대로 찌들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기 때문이다. 휴식이 절실할 때였고, 그건 나의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친구는 방글라데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과 개인사로 마음이 복잡할 때였다. 여행은 아무래도 좋았고, 그저 친구와 마주 앉아 각자의 지난 몇 개월을 털어내고, 때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간을 찌푸리거나 물개 박수를 치며 웃었으면 했다. 서울과 다카에 사는 우리가 '접선'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태국이 간택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상한 마음과 몸을 이끌고 방콕에서 만났다. 친구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나는 첫날을 숙소에서 뒹굴거리며 대충 보낸 뒤, 다음 날 친구를 마중하러 공항으로 갔다. 친구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나는 '괜히' 그러고 싶었다. 공항에서 누가 날 기다리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출장이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공항에 누군가 나와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으니까.


8개월 만에 방콕에서 재회한 친구와 나는 프랜차이즈 수끼집에서 첫 식사를 했다. 배는 고프고 마음에 드는 식당은 없고, '프랜차이즈라면 평타는 치겠지' 싶어 선택한 곳이었다. 완탕 수프인가 뭔가를 시켰는데, 이게 정말 완탕 수프인가 뭔가 싶은 맛이었다. 맹물에 완탕 몇 개가 둥둥 떠있었다. 우리는 허탈함에 껄껄 웃으며 창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 태국은 역시 '창'이지!


여행의 진짜 목적지는 치앙마이였는데, 첫날 완탕 수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2차 사건이 발생한다. 치앙마이행 국내선을 놓친 것이다. 기차도 놓쳐보고 버스도 놓쳐봤지만 비행기를 놓친 건 친구나 나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숙소에서 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좀 빠듯하긴 했어도 하필 그랩(grab) 택시 기사 아저씨가 근처에서 헤매며 20분 이상을 지체할 줄은, 그래서 콜을 취소하고 길에 나가 택시를 잡는데 10분이 또 걸릴 줄은, 어렵게 잡아탄 택시 기사님이 "하이웨이 플리즈"라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30분이면 될 거리를 국도로 달려 50분 동안 안전 운전하실 줄은, 그 와중에 연로한 기사님이 갑자기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가실 줄은, 우린 정말 몰랐던 것이다. 나는 구글 번역기에 "faster"라고 입력한 뒤 휴대폰을 기사님 귀에 갖다 대고 태국어 음성을 송출했다. 기사님은 그제야, 택시가 비로소 공항도로에 진입한 그 시점에야 우리가 급하단 것을 눈치챘다. 부웅, 하는 소리를 내며 택시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와중에 친구와 나는 작전을 짰다.

"일단 내가 체크인 카운터로 달릴게. 네가 계산하고 뒤따라 뛰어와."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여권을 꼬옥 움켜쥐었다. 친구가 안심하란 듯 덧붙였다.

"방글라데시에선 보딩 10분 전에 도착해도 탈 수 있어."

그 말에 나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며 답했다.

"그래, 국내선이잖아."


하지만 방콕이, 태국이 어떤 곳인가?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공항 시스템이 훌륭한 곳 아닌가. 내가 인도차이나반도의 여러 나라 중 태국을 좋아하게 된 건 '버스가 정시에 출발한다'는 이유 때문이지 않았던가. 우리가 예약한 항공편의 체크인은 종료된 지 오래였다. 다행히 수수료를 내면 세 시간 뒤 비행기로 변경해준다고 했다. "댓츠 그레잇"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뒤늦게 양손에 캐리어를 끌고 달려온 친구도 상황이 종료된 걸 파악했다. 우리는 하얗게 질린 서로의 얼굴을 보고 낄낄 웃었다.

"야, 대박이다! 비행기 놓친 건 진짜 처음이다!"


어렵게 도착한 치앙마이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뭐지? 이번 여행은 대체?' 싶었지만, 에어비앤비 숙소가 마음에 쏙 들어서 친구와 나는 흐흐 웃었다. 그 집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우기라 비가 자주 왔는데, 스콜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열대 나라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밤마다 개구리가 개굴개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차를 마시고 각자 책을 보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점심엔 국수를 먹고 카페에 갔다. 요가를 하거나 트레킹을 하기도 하고, (당연히) 마사지도 받았다. 밤에는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숙소에는 항상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내가 아는 몇 안되는 태국 뮤지션인 품 비푸릿(Phum viphurit)이나 스윔 앤 짐(Swim and gym), 혹은 '보사노바 모음'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기도 했다.


치앙마이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 이틀을 묵었다. 선선하고 느린 치앙마이에서 대도시 방콕으로 돌아오자 여행의 테마도 바뀌었다. 우리는 재빨리 '효리네 민박' 모드에서 '꽃보다 청춘' 모드로 여행의 이퀄라이저를 조정했다. 가져온 옷 중 그나마 가장 세련된 옷을 꺼내 입고 루프탑 바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먹은 뒤, 자정이 될 무렵 클럽으로 향했다. 우리가 간 클럽은 1층에서는 라운지 음악을, 2층에서는 EDM을 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콕의 젊은이가 반 외국인이 반 정도였다. 1층과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도저히 우리의 귀가 EDM을 버텨주질 못해서 1층에 터를 잡았다. 그 클럽에서 우리가 제일 나이가 많은 건 아닐까 걱정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리듬에 몸을 맡겼다. 틈틈이 방콕의 부잣집 도련님들을 흘깃거리면서(아마 나보다 열 살쯤 어리겠지). 누군가 우리에게 술을 사겠다며 말을 걸기도 했는데 친구와 나는 못 알아듣는 척하고 다시 무아지경의 춤판을 벌였다.


방콕에서의 뜨거운 밤이 지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한 아침이 왔다. 각자의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었다. 하루 먼저 온 내가 하루 먼저 떠났다. 공항으로 갈 택시에 짐을 실으며, 너랑 여행해서 좋았다는 말,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음번엔 동북아시아에서 보자”는 말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여담이지만 우리는 세 달 후 동북아시아가 아닌 서남아시아에서 다시 만난다).


택시는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금세 공항으로 가는 고가도로에 올라섰다.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인터내셔널 디파쳐, 플리즈”라고 말한 뒤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취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문제를 안고 어딘가로 떠나지만, 그래서 그 여정이 끝날 때쯤엔 인생이나 내가 달라져있길 기대하지만, 여행은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한다. 읽던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다가도, 결국엔 책갈피를 꽂아 둔 페이지를 펼쳐 마지막으로 읽은 문장을 눈으로 더듬어가며 찾아야 한다. 내 이름 앞으로 지정된 그 자리에 앉아 정해진 시간을 비행해야 하듯이,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한 사람으로서 각자의 몫을 해내야 했다. 저가 항공의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 넣고 있다 보면 시간을 ‘보낸다’기 보다는 ‘견딘다’라는 동사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순간 이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맛없는 기내식을 먹고 가져온 책을 읽으며 ‘견딘다’는 건, 의외로 능동적인 행위 아닌가, 하며. 그러니 견디는 게 그렇게 지독한 일인 것만은 아니라고, 지금이 태평양 한가운데인지 중국 영공인지 알 수 없어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안전하게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여행이 아무것도 바꾸어놓지는 못할지언정 ‘견딤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창' 맥주와 세븐일레븐과 낯선 도시에서 흔들어제낀 내 팔다리의 흥겨움, 혹은 그 모든 걸 함께한 어떤 사람으로부터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음번 방콕행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마 나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스카이스캐너'를 켜서 ‘BKK’를 검색할 것이다. 부디 그때에, 어딘가로부터 도망 왔더라도 내게서는 도망가지 않을 누군가, 그래서 기꺼운 마음으로 마중할 수 있는, 비행기를 놓치고 맹물 완탕 수프를 먹어도 낄낄 웃을 수 있는 이와 함께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비행기에서 오고가는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한대도, ‘우리’의 방콕이 모든 일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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