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식물 무서워. 걔네들 말도 안 하면서 조용히 쑥쑥 크잖아.”
친구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따옴표 통째로 기억하는 걸 보면 꽤 강렬했던 것 같다. 식물이란 말없이 쑥쑥 크는 아이들이구나. 목이 마르다고 낑낑대지 않지만 물을 주지 않으면 조용히 죽어가는 아이들이구나.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한 달 전, 친구로부터 화분 네댓 개를 받았다. 나는 무언가를 돌보고 가꾸는 것에 전반적으로 소질이 없는데, 그중 제일은 식물을 키우는 일이다. 내 손에서 살아남은 식물이라고는 죽이는 게 더 어렵다는 스투키가 유일하다. 얼떨결에 화분을 받아온 나는 며칠 동안 어쩔 줄을 몰랐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이 무사한 지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물을 주고 볕을 쬐이고 바람을 쐬였다.
식물들은 내게 애정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내가 주는 관심만큼 묵묵히 자랐다. 물꽂이 해 둔 고무나무와 금전화 가지에서 뿌리가 나왔고 애플민트는 놀라운 속도로 커졌다.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는 일이 세상이 몇이나 되나. 사랑이 거절당하고 노력은 배신하는 일상에서 말없이 내 곁에서 크는 존재란 얼마나 큰 위로인가. 주는 만큼 받을 수 없는 관계에서, 내 맘 같지 않은 사람에게서, 기대는 무너지고 용기는 무력해지는 상황에서, 식물들은 바라는 것도 없이 쑥쑥 자란다.
잎이 시들해졌던 아이들을 주말 동안 옥상에 두고 물과 볕과 바람을 주었더니 금세 기운을 차렸다. 나는 애플민트를 두 손으로 훑어 손바닥을 코에 갖다 대고 흐음, 하고 심호흡한다. 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