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동료에게서 쪽지와 선물을 받았다. 독자라 하기엔 겸연쩍지만 독자가 아니면 달리 부를 말이 없긴 하다. 쪽지에는 책 재밌게 잘 읽었다고,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한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나는 답례로 싸인이라 하기엔 민망한, 내 이름 석 자를 책 첫 장에 정직하게 적어 친구 편에 보냈다.
아주 잠시 백수 겸 프리랜서의 삶을 살다가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온 지 일주일. 나는 빠르게 나인-투-식스 직장인의 생활에 적응했다. 10개월의 공백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한 열흘쯤 휴가를 다녀온 사람처럼.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지난한 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날들. 글머리표를 붙여 명사형으로 끝나는 문장만 쓰다 보면, 내 인생에서 ‘싸인’이란 결재를 받거나 결제를 할 때만 필요하리라 생각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든 원래 있던 사람처럼 금세 스며드는 게 내 장점이니까.
그러다 이 쪽지와 선물을 받았다. ‘앞으로의 활동’ 보다는 ‘향후 일정’이나 ‘근무 계획’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생활로 돌아온 내게 이 응원의 메시지는 묘하게 낯설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무언가를 쓰고 만드는 일이 내 인생의 이색적인 경험으로 남을지, 일생을 두고 계속될 일상이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멋지고 대단한 아티스트는 못되어도, 반복되는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패터슨이 될 수 있다면, 사실 그것만큼 더 멋지고 대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로 <중장기 방향성 및 도전과제(안)>을 마무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