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절대 없어~! - 에베소(에페스), 터키
터키에 오기 정확히 두 달 전, 나는 로마에 있었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를 보며 감탄했던 그때가 점점 잊힐 때쯤, 다시 로마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오게 됐다. 파리 시내에 로마시대 공중목욕탕 터가 있을 만큼 제국의 흔적은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그 흔적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 터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도 꽤 볼만한 상태로.
셀축 시내에서 30분 정도 차로 이동해서 도착한 조용한 산. 하지만 입구에는 으레 모든 관광지가 그렇듯 이것저것 파는 사람들이 먼저 날 반긴다. 이곳을 구경하기 전이라 다른 건 아직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포로 로마노를 봤던 그때의 날씨와 지금 이곳 터키의 날씨만은 똑같다. 똑같이 덥고, 똑같이 그늘막이 없어 뜨거운 햇살을 피할 곳이 없다.
거의 무너졌지만 아름다운 아치 모양만은 남아서 세월을 이겨냈다. 도시의 입구에는 공중목욕탕이 있어 이방인들이 도시에 들어오기 전 무조건 목욕을 해야만 했다. 그때도 이미 위생과 건강까지 생각하는 수준으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건 언제 들어도 참 놀랍다. 지금만큼의 의술이 없어서 - 물론 지금 만큼의 질병도 많이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은 되지만 - 예방책은 많이 없었어도 위생으로 그걸 대신하고 있던 참 똑똑한 로마인들이다.
그때 목욕을 마치고 이 넓은 대로로 들어선 이방인들이 그랬듯 나 역시 에베소의 크레테스 대로에 서 있다. 에베소가 제법 큰 무역항이어서 이곳은 늘 많은 사람들과 외국인들로 붐볐을 것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부푼 꿈을 안고 대도시에 입성한 사람들과 그들의 꿈. 제국의 몰락과 함께 그 꿈도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묻혀버린 느낌이다.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엔 로마 유적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극장이 있다. 소극장이란 이름처럼 정말 무대가 아담하다. 하지만 이 작은 곳에도 신분에 따라 사람들이 앉는 위치는 달라서, 귀족들은 무대에서 가까운 차양 아래 지정석에 앉아서 그 시간을 즐겼다.
로마에서 보다 더 많이 남아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이키 때문에 더 유명한 행운의 여신 니케,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온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들을 물론이고 신화 속 신들보다 더 유명한 헤라클레스와 메두사까지 벽에, 문에, 기둥에 조각되어 있다. 내겐 재미난 이야기일 뿐인 그것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행운의 여신 니케의 옷자락에서 영감을 얻어서 나이키의 로고를 만들었지만 그 대가는 100달러 채 안 되는 돈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움을 느낄 새도 없이 본인의 신발을 들고 한 관광객을 보고 웃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모자도 나이키다.
어딜 가나 마주치는 고양이. 이 야산에 집고양이처럼 보이는 녀석들은 상인들이 데려온 건지 원래 살고 있던 건지 알 길이 없지만. 알고 보니 이곳 관리인들이 고양이도 관리하는 듯 곳곳에 고양이 물그릇이 있다. 물 마시는 고양이는 에베소 유적과 괴리감을 일으키지 않고 묘하게 어울린다.
시청과 귀족들의 공중목욕탕, 신만큼이나 절대적으로 추앙받던 몇몇 황제의 신전을 지나면 이전까지 보았던 숭고함과 존경과는 정반대의 장소가 나타난다. 돈을 내고 사랑을 얻어가라는 의미의 하트 모양과 이 발보다 작은 사람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의 '청소년 출입 금지'가 참 센스 넘친다. 몇 천년 전의 사람들도 사랑과 마음이 우리 몸 안의 심장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는 걸까? 수십 세기가 지났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로의 저끝, 화려한 폐허는 셀수스 도서관이다. 그 당시 도서관이 있었다는 것이 참 놀랍다. 그 당시에는 글 읽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귀족뿐이어서 도서관을 이용하던 사람도 귀족뿐이었지만, 그 옛날에도 이미 지식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로마인들이 어디까지 발전을 하고 있던 건지, 한때 대륙을 지배하던 힘이 바로 이곳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넓은 아고라 터 옆에는 그보다 더 넓은 원형경기장이 있다. 경기장의 한 면은 이미 무너져 버렸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거대한 위용을 숨길 수는 없다. 글래디에이터 영화 속 그 잔인한 경기가 다시 한번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2달 만에 다시 만난 로마의 도시에서 그 당시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꼈지만, 한편으로 씁쓸함도 느꼈다. 그 당시는 로마의 땅, 지금은 터키의 땅. 이스탄불 역시 그랬듯이 이 땅의 주인은 지난 이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지... 그에 따라 사람들은 참 고달프게 살았을 게다. 참 영원한 것은 정말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게 만드는 터키의 로마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