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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Apr 10. 2017

[터키] 셀축(혹은 에베소) 거리를 걸으며

이사베이 모스크와 아르테미스 신전은 덤.

1층의 가게가 참 정겹다. 어린시절 쪽자(달고나) 해 먹던 그 구멍가게 같이 생겼다.
드문드문 보이는 야자수에서 보이듯 날씨가 더운 이 곳.

여행을 가서 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목적지 없이 그냥 걸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나 이렇게 작은 마을에 골목도 많고 조용한 셀축이라면. 호텔이 군데군데 있어 여행이 주는 가벼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역시나 맛있고 저렴한 터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마음에 든다. 해 질 녘 온 마을에 무슬림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울리고 사람들이 거리에서 하나둘 사라지면 이 마을이 그렇게 신기하게 보일 수 없다.

성 요한 기념교회를 뒤로 하고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독특한 건물, 이사 베이 모스크 Isa Bay Mosque. 커다란 큰 굴뚝 때문에 언뜻 목욕탕 느낌이 나기도 한다. 기독교의 성지란 이름에 가려 이곳이 잠시 터키란 것을 잊고 있었다. 모스크의 입구를 지나면 바로 중앙의 정원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정원을 둘러싸고 모스크는 정사각형으로 우뚝 서 있다. 

빨간 양탄자가 깔려 있는 모스크의 내부는 아침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더 휑하게 보인다. 모스크 안에 유일하게 있던 생명체인 고양이는 동상처럼 미동 없이 앉아 있다.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해도 자신이 주인인 양 꼼짝도 하지 않는다. 소박한 모스크 내부는 작은 시골 교회를 연상케 한다. 무슬림도 종파마다 뭐가 다른 건지 이스탄불에서 봤던 모스크에는 기둥이 4개가 있었는데 이곳은 하나만 있다. 

당연히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보다는 그 화려함이 덜하겠지만 이곳도 그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곳은 기도당보다는 중앙의 정원이 더 아름다워서 기도당으로 통하는 돌계단에 앉아서 정원을 계속 바라보았다.


 

모스크를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면 가까운 시야에 큰 기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이 일어 그곳을 향해 걸어가지만 의외로 입구 찾는 게 좀 힘들다. 가는 길에 만난 이정표에서 알게 된 그 기둥의 정체, Temple of Artemise (아르테미스 신전)! 


운 좋게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 신화의 신전을 만났다. 게다가 원조 걸 크러쉬라고 생각하는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전이라니... 이름을 보고 참 감격스러웠지만, 사진처럼 이곳은 완전히 폐허로 남아 있었다. 고대 7대 불가사의에 남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신전이었다고 하는데 '헤로스트라로스'라는 이가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이유로 이곳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몇 년 전 불타고 있던 남대문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거대한 기둥만 172개가 되었다고 하고, 신전 전체가 축구장 세 개를 합친 규모 정도였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안 간다. 신전이 폐허가 된 뒤 이곳저곳에서 신전의 돌을 가져다가 궁전과 모스크를 짓는데 썼다고 하니 더 마음이 짠하다. 

폐허가 된 신전터엔 새들과 잡초만이 무성하다.

아르테미스 신전과, 이사 베이 모스크와 성 요한 기념교회가 하나의 시야에 다 담긴다. 무려 3개의 전혀 다른 문화가, 종교가 이곳 셀축에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터키라는 나라가 주는 매력. 한 도시에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던 아름다운 이스탄불을 지나 이곳에는 그리스 신화, 무슬림, 기독교가 한 곳에 있다. 한 나라에서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 비잔틴 등등 유럽과 중동의 거의 모든 역사를 한데 어울려 놓은 터키.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터키다. 

에베소 냉장고 자석을 사러 들어간 가게 뒤에서 자석을 만들고 있는 장인!

한국의 80년대를 연상시키는 이 거리. 이발하는 게 뭐 그리 신기하다고 내가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곳은 사람 냄새 가득한 곳이었다.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하며 놀고, 집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곳. 아이들이 동네에서 숨바꼭질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안 해 본 놀이가 없을 정도로 정말 신나게 놀며 행복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자라고 있는 요즘 한국 아이들이 오버랩되며 씁쓸해진다. 해 질 녘 동네 카페에 모여 마작 같은 게임을 하던 할아버지들은 해가 지고 나서도 앉은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 동네를 연상시키는 셀축. 술래잡기하기 딱 좋은 골목길과, 해 질 녘 집 앞에서 부모를 기다리는지 앉아 있던 아이들. 이발소 앞 널어 놓은 수건도, 옷가게 앞에 위태롭게 서 있던 무섭게 생긴 마네킹도 구멍가게 앞 널어놓은 불량식품 같은 과자도... 왠지 내가 살던 그 동네 같아서 참 좋았다. 한동안 떠올릴 일 없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오랜만에 향수에 잠겼던 셀축이었다. 

레스토랑에도 터키 국기가 걸려 있는게 참 인상적이다. 할아버지들의 게임은 밤늦도록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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